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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위해 희생했는데”…인제군, 정부 인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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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봉 교수의 [제주 4․3 사건 유적지 자전거 기행 ⑤] 제주 동북부 유적지<2>

4․3사건 유적지를 교육의 장으로 삼자

2009년 12월 01일(화) 17:08 [인제신문]

 

↑↑ 이규봉 칼럼위원(배재대학교 교수)

ⓒ 인제신문


12번 일주도로에 있는 북촌초등학교를 찾았다. 매우 평화스러워 보이는 이 학교에서 북촌학살 사건이 일어났다.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의 배경이 바로 이곳 북촌리이다. 1949년 1월 17일 2연대가 함덕으로 이동하던 중 유격대의 기습으로 군인 2명이 죽자 학살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음력 12월 18일은 온 동네 제삿날이 되었다.

400여명 사격연습용으로 희생

군인들은 300여 채의 마을 가옥에 불을 질렀고, 군경 가족을 제외한 주민을 20명 단위로 옴팡밭으로 끌고 가 학살했다. 단 이틀만에 400여 명이 학살되어 󰡐무남촌(無男村)󰡑이라는 이름까지 얻었다. 실전 경험이 없는 사병들의 사격 연습용으로도 학살이 이뤄졌으며, 희생자 중에는 젖먹이 어린애를 안은 여인도 있었다. 당시의 분위기를 알기 위하여 현기영의 <순이삼촌>을 인용해 본다.

"어떤 집에서는 아무래도 불길한 예감이 들었던지 사내 아이들을 다른 마을로 보내기도 했다. 그것도 큰놈은 읍네 이모네 집에, 가운데 아들은 함덕 외삼촌한테, 막내놈은 또 어디에 하는 식으로 사방에 뿔뿔이 흩어놓았다. 그건 아마도 한군데 모여 있다가 몰살되어 씨멸족하면 종자 하나 추리지 못할까봐 생각해 낸 궁리였으리라."
"도피자 아들을 찾아내라고 여든살 노인을 닥달하던 어떤 서청 순경은 대답 안한다고 어린 손자를 총으로 위협해서 무릎 꿇고 앉은 제 할아버지의 따귀를 때리도록 강요했다. 그들은 또 여맹이 뭣 하는지도 모르는 무식한 촌 처녀들을 붙잡아다가 공연히 여맹에 가입했다는 혐의를 뒤집어씌우고 발가벗겨놓고 눈요기를 일삼았다."
"그 무섭던 소까이. 온 섬을 뺑 돌아가며 중산간 부락이란 부락은 죄다 불태워 열흘이 넘도록 섬의 밤하늘을 훤히 밝혀 놓던 소까이. 통틀어 이백도 안 되는 무장폭도를 진압한다고 온 섬을 불 지르다니, 그야말로 모기를 향해 칼을 빼어든 격이었다. 그래서 이백을 훨씬 넘어 5만이 죽었다. 대부분 육지서 들어온 토벌군들의 혈기는 그렇게 철철 넘쳐흘렀다."

↑↑ 평화스러워 보이는 북촌초등학교. 주변이 학살터이다.

ⓒ 인제신문




애기가 뭔 죄가 있다고

북촌초등학교에서 함덕해수욕장 가는 길 언덕 위에 󰡐너분숭이 애기무덤󰡑이 있다. 유적지가 잘 마련되어 있는 이곳은 당시 죽은 아기들이 그냥 그 자리에 묻힌 곳이다. 아이들 영혼은 저승에 가지 않고 까마귀가 갖고 간다 해서 정식 무덤을 쓰지 않는 게 제주도의 풍습이다.
마지막으로 북촌리 근처에 있는 함덕해수욕장을 찾았다. 맑은 백사장이 넓게 펼쳐진 평화스러운 곳이다. 고려시대 대몽항쟁기에 삼별초를 토벌하러 왔던 여몽연합군의 상륙지기도 한 이곳은 군 주둔지로 민간인 학살이 많이 자행된 곳이다. 9연대 2대대, 후에 2연대 3대대가 주둔하였다. 조천면 관내 사람들이 주로 희생되었으며, 유격대에 의해 죽은 군인 2명의 시신을 수습해 갔던 마을 유지들도 경찰가족 1명을 제외하고 8명 전원 이곳에서 학살되었다.

알베르 까뮈는 말한다. "과거의 잘못을 단죄하지 않는 것, 그것은 미래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이다." 단죄한다는 것은 단순히 보복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시는 그러한 잘못이 나오지 않도록 역사적 사실을 감추려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제주 4․3 사건을 포함하여 한국전쟁을 전후한 민간인 학살을 우리는 그동안 숨겨 왔다. 4․19 혁명으로 밝힐 기회를 잡았으나 가해자인 군인들에 의해 다시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사실을 제대로 밝힐 수가 없었다.
한국전쟁을 전후 한 민간인 학살을 숨기고 오히려 정당성을 부여한 박정희 정권은 베트남 전쟁에 우리의 군인을 파견했다. 세계가 반전운동이 무르익을 때도 우리는 독재정권 아래에서 귀 막은 채 침묵하고 있었다. 그 결과 우리가 우리에게 저지른 것과 같은 수법으로 우리 군인은 이민족인 베트남의 민간인을 또 학살하였다.
우리가 저지른 베트남의 민간인 학살에 대하여 거의 알지도 못했고 그에 대한 어떠한 반성도 없었기에 우리는 또 다시 같은 민족인 광주 사람을 빨갱이로 매도하며 학살하는 사건을 불러 일으켰다.

↑↑ 애기가 뭔 죄가 있다고. 너분숭이 애기무덤.

ⓒ 인제신문



"반성이 없으면 용서할 수 없다"

지금도 우리는 우리가 저지른 학살에 대하여 잘못 알고 있을 뿐더러, 원인과 과정을 정확하게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남의 일인 양 생각하며 명예회복은커녕 오히려 또 한 번 가해하려고 한다. 반성은커녕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는 가해자들을 유감스럽게도 정치적으로 용서해 주었다. 역사는 돌고 또 돈다. 언제 또 이런 학살을 우리가 당할지 모른다는 것이 매우 염려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역사적 사실을 숨기려 하지 말고 사실 그대로 밝혀야 한다.
'제주 4․3 사건 유적지를 잘 보존하고 홍보하여 교육의 장으로 삼자'는 것은 바로 이러한 우려에서 나온 것이다. 이것은 제주도민 만의 일이 아니고 우리 전부의 일이다. 아렌트(H. Arendt)는 말했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자비가 아니라 정의이다. 정의가 없는 동정은 악마의 가장 강력한 공범자의 하나이다." 반성이 없으면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선은 진실을 밝혀야 하고 가해자는 반성하고, 그 때야 비로소 피해자는 용서하여 화해와 상생으로 가야 하는 것이다. 반성이 없는 그들을 정치적으로 용서하면 정치적으로 소기의 목적을 획득할 수는 있겠으나 결국 미래의 범죄를 막을 수 없어 동시에 공범자가 되는 것과 같다.
하늘도 슬펐던지 유적지 방문을 모두 마치고 공항으로 가는 길에 엄청나게 많은 비가 쏟아 내린다. 피해자들이 흘린 눈물이 이보다 더 적지는 않았을 것이다. 화해와 상생을 생각하며 비행기에 올랐다. 오늘 주행은 공항까지 95km였다. <끝>

※이 글을 쓰면서 이영권의 <제주역사기행>을 참고하였음

인제신문 기자  inje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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