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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옥.김영조의 '일본 속의 한국문화 톺아보기'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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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부 1편 백제여인의 아들 간무천황, 교토신이 되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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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22일(화) 11:33 [인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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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풍신수길의 화려한 우마차. | ⓒ 인제신문 | |
행사 30분 전에 입장하여 자리를 잡아 앉았지만 10월의 햇살이 보통 따가운 게 아니었다. 일행 중 여성회원들은 미처 모자를 준비 못 해 신문지를 접어 임시 모자를 만들어 쓰느라 부산하다. 기온마츠리 때와 마찬가지로 제일 좋은 앞줄을 예매한 까닭은 고국의 독자들을 위해 양질의 사진을 찍기 위함이었다. 신문지 모자도 만들어 쓰지 못한 관람객들은 따가운 햇살을 손으로 막은 채 마츠리행렬이 시작되는 쪽으로 눈과 귀가 쏠려있었다.
오후 2시. 드디어 차량통행이 금지된 중앙로 오른쪽에서 악기 소리와 함께 마츠리 행렬이 들어온다. 하지만, 기온마츠리 때에 비하면 구경꾼들이 그리 많지 않다. 7월에 열린 기온마츠리 때는 찜통더위임에도 입추의 여지없이 들어선 구경꾼들로 인해 도심은 완전히 사우나장을 방불케 했었다.
그런데 지다이마츠리는 그에 견주면 조용하다 못해 축제다운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왜 기온마츠리와는 다른 분위기일까? 그 답은 마츠리 행렬이 끝나고야 이해하게 되었다.
지다이마츠리는 해마다 10월 22일 교토어소(御所)로부터 헤이안신궁까지 가장행렬을 하는 마츠리로 명치유신부터 헤이안시대 옷을 입은 화려한 행렬이 푸른 가을 하늘과 아름답게 조화를 이뤄 눈요기에 그만이다.
헤이안(지금의 교토) 천도 1100년인 1895년(명치28) 3월 간무왕을 신으로 모시는 헤이안 신궁이 창건되었다. 이를 성대히 축하하고자 각 시대 풍속의 변천을 표현하는 시대행렬을 하자는 의견이 모여 1895년 10월 25일 처음 열린 것이 지다이마츠리의 시작이었다.
초기에는 교토의 신 간무왕과 명치말기 막부정권 속에서도 꿋꿋이 황실을 지켜낸 효명왕 두 신령을 위한 제례의식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이는 헤이안신궁에 참배하는 형식이었으나 후에 두 신령이 교토어소로부터 시내를 순행하여 번영된 도시 모습을 시찰하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마츠리 날짜는 그 이듬해부터 간무왕이 교토로 천도한 날인 10월 22일로 바꿔 열리고 있으며 2009년은 헤이안 천도 1215년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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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전체 행렬 중 가장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도쿠가와막부 행렬의 무사 모습이다. | ⓒ 인제신문 | |
지다이마츠리는 초기에 여섯 모듬으로 시대를 나눈 6행렬이었으나 1932년(소화 7)부터 풍신수길 행렬 등이 추가되어 10행렬이 되었다. 2차 대전이 격화되던 1944년 무렵엔 일시 중지되었으나 1950년에 다시 시작했는데 이를 계기로 에도시대, 중세시대, 헤이안시대 등 3시대를 대표하는 여인행렬이 추가되었고 1966년에는 메이지유신 지사 대열이 보태졌다.
현재의 행렬은 총 20행렬이며 마츠리 행렬에 참가하는 사람은 약 2,000명이다. 뿐만 아니라 70마리의 소와 말이 사람들을 태우고 지나간다. 이렇게 행진하는 길가에는 많은 사람이 각 시대의 화려한 옷과 분장한 인물들을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다. 행렬에 쓰이는 각종 옷과 소도구 등은 교토의 장인들에 의해 철저히 고증된 것으로 각 시대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이 지다이마츠리는 7월의 기온마츠리에 견주면 그 규모나 구경꾼들이 적다. 기온마츠리는 길가에 사람이 움직일 수 없을 만큼 빼곡히 들어차 경찰들이 안전사고에 크게 신경을 쓸 정도였지만 지다이마츠리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특히 기온마츠리 때 보았던 유카타 입은 젊은이들이 전혀 눈에 띄지 않는 점도 특이했다. 그렇다. 젊은이들이 모이지 않는 마츠리는 썰렁했다. 역시 젊은피는 마츠리 때도 필요하다.
왜 사람들이 적게 모인 걸까? 그 까닭은 분명했다. 기온마츠리 때는 32개 가마마다 나름의 볼거리를 가지고 경쟁했기에 끝까지 구경꾼들이 행렬에서 눈을 뗄 수 없는 요소가 있었다. 그러나 지다이마츠리는 화려한 옷차림으로 분장한 사람들이 가장행렬에 참여한 것 말고는 특별히 볼거리가 없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행렬 중간 이후가 되자 꾸벅꾸벅 조는 구경꾼이 보이기도 했다. 아무리 마츠리의 나라라지만 교토에서만 한 해에 3번의 큰 마츠리를 하는 것은 욕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에도, 칭찬해줄 것은 우리의 많은 잔치와는 달리 마츠리가 철저히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 속에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일본에서 두번째 마츠리를 보면서 우리의 잔치(축제)들이 관주도가 아닌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을 가져 본다.
우리 잔치의 전통이 일제강점기 때 일제의 간악한 문화말살 때문에 그 맥이 끊기긴 했지만 이제라도 원래 우리의 본 모습을 찾았으면 좋겠다. 지다이마츠리를 뛰어넘는 단오 큰잔치가 온 나라 곳곳에서 벌어지는 날은 요원한 것일까? 그래서 우리나라에도 문화를 사랑하는 전세계인이 물밀듯이 찾아와 한바탕 화끈하게 놀았으면 하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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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무천황 생모 백제여인, 교토를 접수하다'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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