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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위해 희생했는데”…인제군, 정부 인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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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옥.김영조의 ‘일본속의 한국문화 톺아보기’ <20>

"3.1운동의 도화선, 2.8독립선언자리 지금은 세탁소"

2010년 02월 23일(화) 12:32 [인제신문]

 

↑↑ 2.8 독립선언서 전문 ⓒ 재일본 한국YMCA

ⓒ 인제신문


“조선청년독립단(朝鮮靑年獨立團)은 우리 이천만 겨레를 대표하여 정의와 자유와 승리를 얻은 세계 여러 나라 앞에 우리가 독립할 것임을 선언하노라.”

한겨울인데도 도쿄는 바람이 차지 않다. 3.1운동에 도화선이 되어 준 2.8독립 선언 기념비가 있는 일본 도쿄YMCA를 찾아가는 길은 그다지 낯설지 않았다. 고서점가로 연결된 진보쵸(神保町)역을 나와 작은 골목길에 들어서자 길가에 내어 놓은 팬지꽃 화분의 꽃잎들이 바람에 살랑인다. 동경의 봄은 한국보다 빠르다. 2010년 1월 21일 목요일 낮 햇살이 제법 따스하던 날 “일본 속의 한국 역사문화 답사” 회원들은 YMCA를 찾아 나섰다. 명치대학 건물을 지나고 중견 출판사 집영사를 지나 걷고 걸었지만 아직 우리가 찾는 건물은 나타나지 않는다. 손에 든 닳고 닳은 동경지도를 다시 펼치려는 순간 눈앞에 재일본 한국YMCA라는 일본어 간판이 정면으로 들어온다. 아! 이곳이 그날의 함성을 기념하던 곳이던가! 건물 1층은 호텔 사무소가 있고 2층에 음식점이 있어서인지 우리가 찾던 기념비와 음식점 광고 간판이 나란히 놓여 있는 바람에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자칫 지나치기 쉬운 곳에 2.8 독립선언 기념비는 말없이 서 있었다.

“2·8 독립선언(二八獨立宣言)” 기념비는 1919년 2월 8일 일본 도쿄 재일 유학생이 중심이 되어 적지나 다름없는 땅에서 불굴의 의지를 만천하에 선포한 장한 행동을 기리고자 1982년 세워졌다. 동경 유학생들이 주축으로 일어난 2.8 독립선언 선포식은 삽시간에 절망에 빠져있는 고국에 전해졌고 급기야 3.1운동의 활화산을 뿜어내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우리는 이 감격스런 비문 앞에서 장시간 묵념을 올렸다. 그것은 민족의 독립을 위해 애쓴 애국선열들에 대한 후손된 자들의 최소한의 예의였다. 눈앞에 서 있는 말 없는 이 기념비가 3.1 독립운동의 초석이 된 “2·8 독립선언(二八獨立宣言)”을 기억하는 우리 민족의 마음이란 말인가?

↑↑ 2.8 독립선언 현장인 1919년 당시의 재일본 한국YMCA (왼쪽), 이 건물은 관동대지진 때 불타 없어졌고 그 터는 팔려나가 현재는 세탁소 등이 들어서 있다. (오른쪽) ⓒ 김영조

ⓒ 인제신문


1910년 조선은 일제의 강압에 의해 “한일강제병합"을 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이로부터 9년 뒤 도쿄에 유학하고 있던 조선청년들은 조국의 아픔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1919년 1월 “동경조선유학생학우회”를 중심으로 동경 기독교청년회관에서 웅변대회를 열었다. 이때 독립을 위한 구체적인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고 결의하고, 실행위원으로 최팔용·김도연·백관수 등 11명을 뽑았으며 실행위원들은 “조선청년독립단”을 결성하고 <민족대회 소집청원서>와 <독립선언서>를 만들었다.

그리고 2월 8일 선언서와 청원서를 각국 대사관, 공사관과 일본정부, 일본국회 등에 발송한 다음 기독교청년회관에서 유학생대회를 열어 독립선언식을 거행했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을 일본 경찰이 얌전히 봐줄 상황이 아니었다. 이들은 가차없이 일본 경찰에 의해 강제 해산되는 고통을 당해야 했으며 국외로 파견한 2명을 뺀 9명의 실행위원을 포함 27명의 유학생이 검거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실행위원 전원이 검거되는 상황 속에서도 2.8 독립선언은 그 위력을 발휘하여 당일 체포되지 않은 참가자들이 조선에 잠입하여 3.1 독립선언 준비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조선의 3.1 독립운동은 같은 처지에 있는 중국인들의 가슴에도 불을 질러 5.4운동에까지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동경 유학생이 중심이 된 '2·8 독립선언서'는 '3·1 독립선언서'보다 훨씬 강경하게 일제의 침략을 고발하고 독립을 위하여 최후의 일인까지 투쟁할 것을 선언하고 있다. 따라서 2.8 독립선언은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인 3.1 독립선언을 이끌어낸 위대한 실천이며 민족 자주의 초석인 것이다.

또 이 선언은 일제에 대항하여 그들의 심장부인 동경에서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을 외치고 일제가 불법으로 조선을 침략, 강제 병합하여 우리 민족의 신성한 역사적 전통과 위엄을 파괴한 죄악상을 폭로하는 한편 민족의 생존을 위해 자유의 행동을 취함으로써 독립을 달성할 것을 세계만방에 외친 우국충정에 불타는 우리 젊은 청년들의 정의로운 외침이었으며 절규였다.

이러한 중요한 역사적 선언이 외쳐진 장소가 바로 재일본 한국YMCA 건물이다. 하지만, 그 역사적 건물은 1923년 관동대지진 때 불타 없어졌다. 따라서 현재 동경YMCA 건물 입구에 세워져 있는 기념비는 사실 제자리를 찾아 주어야 한다. 우리는 관동대지진 때 불타 헐려 버린 건물터를 찾아보기로 했다. 마침 재일본 YMCA 일본어학교장 다즈케씨는 우리에게 자세한 옛 건물터가 그려진 약도를 건네주었고 우리는 그 약도를 나침반 삼아 빌딩숲을 헤엄치듯 찾아 나섰다. 현재 건물과는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하지만 워낙 건물들이 뒤엉켜 있어서 옛 YMCA건물터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약도대로라면 현재 터에서 약 500여 미터쯤 막다른 골목길의 세탁소 건물자리여야 한다. 마침 세탁소가 하나 보여 빠끔히 문을 열고 들어가 물어보니 젊은 세탁소 주인은 길 건너 세탁소가 하나 더 있다며 손가락으로 건너편 골목을 가리킨다. 잰걸음으로 가르쳐준 곳을 가보았지만 1938년부터 그 자리에서 세탁소를 했다는 꼬부랑 할머니는 YMCA라는 말이 생소한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분명히 다즈케교장이 건네준 약도상에는 그 자리가 맞지만 아무도 증언해줄 사람이 없다. 우리는 아쉬운 발걸음을 돌리며 그 장소를 정성껏 사진에 담는 수밖에 없었다. 건물을 사들일 수 없다면 하루속히 작은 기념비라도 세워야 할 것이다. 기념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서두르지 않으면 아무도 대신해서 우리의 역사적인 현장을 기억해주지 않는다. 서두를 일이다.

2.8 독립선언서를 만방에 외쳤던 곳, 독립의 씨앗이 민들레 홀씨 되어 만방에 퍼진 곳. 그곳을 우리는 버려두지 말아야 한다. 건물터로 추정되는 세탁소 옆은 6차선의 큰 도로이다. 쌩쌩 달리는 차들의 소음으로 차분히 그날의 함성을 떠올릴 수는 없었지만 오히려 질주하는 차들은 우리 민족이 쉬지 않고 달려온 열정을 말해주는 듯했다.

↑↑ 2.8 독립선언 당시 동경아사히신문 (東京朝日新聞) 1919년 2월 9일 자 내용(왼쪽)
선언 직후 검거된 조선 유학생을 무료 변론해준 후세 변호사 ⓒ 재일본 한국YMCA

ⓒ 인제신문


↑↑ 재일본 한국YMCA 10층에 마련된 2.8 독립선언 기념자료실 ⓒ 김영조

ⓒ 인제신문


2.8 독립선언과 함께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인물이 있다. 다름 아닌 후세다츠지(布施辰治) 씨이다. 1880년 미야자키 농촌에서 태어난 다츠지 씨는 변호사의 길을 걷기 이전인 18세의 어린 나이에 “높은 관직을 얻거나 유명인이 되기보다는 부를 구하지 않고 바른 일을 하면서 가난하게 사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상경하여 명치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할 만큼 고매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다. 그가 조선유학생의 무료변론을 맡아 주지 않았다면 당시 검거되었던 조선 유학생들의 운명은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유학생들의 행동을 두고 일본경찰은 “내란음모죄”를 씌울 참이었는데 후세 변호사는 “유학생들이 자국의 독립을 위해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게 무슨 내란음모죄냐?”라고 반박하는 변론을 맡아 중죄를 면했다는 이야기는 뜻밖에 한국인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다. 또한, 동경YMCA학교 교장 다즈케 씨 역시 한국을 이해하고 한국과의 우호증진을 위해 애쓰는 분 중의 한 사람이다. 우리는 이런 분들의 고마운 애정을 기억하는 성숙한 시민이었으면 한다.

많은 한국인이 국제도시 도쿄를 찾는다. 2.8 독립선언 90돌을 눈앞에 둔 지금 일본 도쿄를 여행 중인 사람이라면 3.1 독립선언의 도화선이 되었던 2.8 독립선언의 현장을 찾아보는 일도 뜻있는 일일 것이다.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몸으로 실천한 선열들의 그날의 함성과 외침과 절규를 들어본다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미래의 청사진은 저절로 그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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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양국의 발전에 이바지하고 싶다
[대담] 재일본 한국YMCA 일본어학교 다즈케 가즈히사 교장


- 2.8 독립선언 기념식은 어디서 주최하는가?
“2.8 독립기념식은 해마다 재일본 한국YMCA와 대한민국 국가보훈처의 공동주최로 열고 있다. 올해도 2월 8일 오전 11시부터 재일본 한국YMCA 지하홀(재일 한국문화관)에서 열 계획이다.”

- 이 기념식에 어떤 분들이 참석하는지?
“김양 국가보훈처장、권철현 주일대사、김영일 광복회장、정진 재일 대한민국민단중앙단장 등 한국 내빈 외에 기독교교회, YMCA 관계자를 중심으로 한 일본시민도 다수 참가한다. 독립운동에 참가한 유학생들의 변호를 무상으로 맡았던 후세 변호사 손자인 오오이시 씨도 매년 참가한다.”

- 원래의 2.8 독립선언 자리에 기념비 세울 계획은 없는가?
“2・8 독립선언의 선포장소가 된 YMCA에서는 2・8 독립선언의 역사적 의의를 한국과 일본 시민에게 널리 전하고자 해마다 2월 8일 기념식을 하는 것 외에 재일 청년단체와 공동으로 1982년에는 기념비 건립을 했고, 2008년엔 2・8 독립선언기념 자료실도 열었다. 하지만. 원래의 자리라는 의미는 중요한 것이어서 지금 그곳에 새로운 기념비를 세우고자 지방정부와 교섭 중이다.”

- 2.8 독립선언 직후 변론을 해준 일본인 변호사가 있었다고 들었다, 어떤 분인가?
“후세(布施辰治) 변호사는 학생 시절에 조선인・중국인 유학생과 친교를 맺은 경험이 있으며 일본 통치 아래서 많은 조선 독립운동가의 변호활동을 무상으로 해준 분으로 2004년에는 일본인으로는 처음으로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받았다.”

참고 http://ko.wikipedia.org/wiki/후세_다츠지

- 도쿄 YMCA는 어떻게 유지 관리되나?
“1906년 동경 주재 조선인 유학생에 의해 설립된 재일본 한국YMCA는 1945년까지는 유학생을 대상으로 한 활동을 해왔으나 1945년 해방 후로는 유학생뿐만 아니라 재일 한국인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한국어 강좌, 한국문화교실 등 민족교육 프로그램을 전개하고 있다. 1980년 현재의 회관이 준공된 뒤부터는 일본 시민과 아시아 각국에서 온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다문화 공생사회의 실현을 목표로 한일교류 프로그램、일본어 교육을 시작으로 한 어학 프로그램, 국내외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숙박시설 운영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 재일본 한국YMCA 일본어학교장으로서 하고 싶은 말은?
“현재 일본에서는 한류붐이 지속적이며 한국에서도 일본대중문화의 인기가 높다. 양국 간을 왕래하는 사람 수는 연간 400만 명을 넘어 한일관계는 역사상 가장 양호하다 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배타적인 민족주의 단체활동도 한창이며 인터넷상에서는 한국인에 대한 민족차별 발언도 끊이지 않고 있다. 세계화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배타적 민족주의는 세계에서 힘을 얻고 있으며 사회에 불만을 품은 층의 인기를 끌고 있다.

감정적으로 고립과 적대의 길을 걸을 것인가 아니면 차분한 자세로 화해와 공생의 길을 찾을 것인가가 지금 우리 세계의 기로이다. 나는 지금까지 YMCA에서 일본과 한국이 화해와 공생의 길로 나가게 되는 첫걸음으로서 일본과 한국 청소년이 만나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친구가 되기 위한 교류장소의 제공을 위한 노력을 해왔다. 앞으로도 그 노력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는 한편 국내와 국외에서 같은 목적을 지니고 활동하는 분들과 협력하여 연대해 나가고 싶다.”

↑↑ 재일본 한국YMCA 1층 2.8 독립선언기념비 앞에선 다즈케 교장(왼쪽)과
글쓴이 ⓒ 김영조

ⓒ 인제신문


유창한 한국어 실력의 다즈케 교장선생님은 바쁜 가운데서도 인터뷰는 물론 10층 자료실에서의 친절하고 상세한 설명을 비롯하여 한국에서 찾은 우리 일행을 따뜻하게 맞이해주었다. 헤어질 때는 1층 현관 입구까지 배웅을 나와 기념비 앞에서 기념 촬영까지 응해주는 등 적극적인 모습에서 한국문화가 일본 안에서 뿌리를 내리는 데 크게 이바지하는 분임을 느꼈다. 한국문화와 역사에 애정을 가진 일본인들이 많아질수록 한일 친선과 우호증진은 빠른 속도로 확산 될 것임을 믿으며 YMCA 건물을 나왔다. 무척 보람 있는 하루였다.

글쓴이
이윤옥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rhsls645@hanmail.net)
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pine4808@paran.com)

인제신문 기자  inje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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