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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위해 희생했는데”…인제군, 정부 인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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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옥의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일본말 찌꺼기 <28>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2010년 03월 16일(화) 13:00 [인제신문]

 

↑↑ 이윤옥 칼럼위원(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 소장)

ⓒ 인제신문



전라도 길
- 소록도로 가는 길-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수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절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졌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千里), 먼 전라도 길.

-한하운_


마음이 울적하여 이런 저런 시집을 뒤척이다 눈에 들어 온 시다. 문둥이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한하운은 본명이 태영(泰永)이고 함경남도 함주 출생이다.
중국 베이징[北京]대학 농학원을 졸업한 뒤 함남 ·경기 도청 등에 근무했으나 문둥병의 재발로 사직하고 고향에서 치료에 전념하다 1948년에 월남한다.
자신의 처지를 담담히 엮어낸 1949년 제1시집 《한하운 시초(詩抄)》, 제2시집 《보리피리》를 지었으며 1956년 《한하운시전집》을 출간하였다.
1958년 자서전 《나의 슬픈 반생기》, 1960년 자작시 해설집 《황토(黃土) 길》을 내었으며 천형(天刑)의 병고를 구슬프게 읊어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

왜 문둥병을 하늘이 내린 형벌이라 했을까? 누군들 그런 병에 걸리고 싶어서 걸리겠는가?
몸이 썩어 들어가고 문드러지는 병에 걸렸을 때의 그 아픔을 성한 우리가 알 수는 없으리라! 다만 그가 노래한 시를 통해 그를 짐작해 볼뿐.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지는 병을 우리가 어찌 이해 할 수 있겠는가. 다만 이런 병을 내린 하늘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여기서 “지까다비, 地下足袋”는 일본말이며 우리말로 “신발겸용버선”이다. 앞에 지까 “地下”가 안 붙는 “다비,足袋”는 우리의 버선에 해당한다.
한하운 시인이 살던 시기는 지금처럼 양말도 신발도 흔치 않았을 것이다. 양말을 신고 그 위에 구두를 신는 요즈음은 “지까다비, 신발겸용버선”를 신던 시대에 비하면 호강이다.
일본위키피디어사전을 참고로 지까다비(地下足袋, じかたび)를 설명한다면 작업노동용 신발로 모양은 우리의 버선처럼 생겼다. 버선 밑바닥에 얇은 고무를 깔아서 따로 신발을 신지 않아도 되는 이른바 신발겸용버선으로 보면 이해가 쉽다. 예전에는 흙일이나 농사지을 때 신었고 지금은 마츠리(일본 축제)때 가마꾼들이 주로 신는 신발이 지까다비다.
한자로 “地下”라고 쓴 것은 곧바로 직접 버선발을 땅에 댄다는 일본말 「直,じき」가 변해서 「直,じか」가 되어 ‘지까’와 소리가 같은 「地下」라는 한자를 쓰게 된 것이다.
이런 것을 우리말로는 차자‘借字’ 일본말로는 아떼지 ‘當者’라고 한다.

한하운은 1920년에 태어났으므로 첫 시집을 낸 것이 1949년이면 29살 무렵인데 이때는 이미 해방이 된 뒤다. 이 무렵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두 “지까다비”를 신었던 것일까?
고무신도 귀한 시대에 버선 밑바닥에 고무를 댄 신발겸용버선인 “지까다비”는 서민용 신발임은 틀림없다. 지까다비를 모르는 사람은,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을 “신을 벗고, 버선을 벗으면”으로 잘 못 이해 할 수 있다. 그러나 한하운도 이때 버선용신발을 신었던 것 같다.

먹을 것도 없이 신발겸용버선을 신고 아무도 반기지 않는 일그러진 얼굴로 소록도로 가는 길 버드나무 가에 앉아 아픈 다리를 쉬면서 벗어본 “지까다비”속에 문드러진 발가락을 하릴없이바라다보고 있는 시인의 모습이 정물화처럼 그려진다. 문드러진 발가락과 “흙버선”조차 일본의 “지까다비”에 의존해야했던 우리의 지난한 세월은 들여다볼수록 아련하고 가슴 아프다.
개인적인 사사로운 울적함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인제신문 기자  inje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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