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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옥의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일본말 찌꺼기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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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이 목숨이다’라고 쓴 외솔 선생 <방명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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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3월 23일(화) 09:48 [인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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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윤옥 칼럼위원(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 소장) | ⓒ 인제신문 | |
“외솔 선생이 쓴 ‘한글이 목숨’이라는 붓글씨가 공개되어 화제입니다. 붓글씨는 ≪금서집(錦書集)≫이란 고서에서 발견되었는데 1932년부터 1936년까지 5년 동안 한 음식점 주인이 받은 80쪽짜리 방명록입니다. ‘비단처럼 아름다운 글을 모은 책자’라는 뜻의 ‘금서집’은 거의 한문이었고, 한글은 4점, 영문이 2점, 일본글이 2점이 있습니다. 한글을 쓰지 못하게 했던 일제강점기 그 험한 시절에 방명록에 당당하게 한글로 그것도 “한글이 목숨”이라고 쓴 외솔의 기개가 놀랍습니다. -얼레빗과 함께하는 우리말 26. 김영조-
1932년이라면 악명 높은 일제 순사가 조선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던 시절이다. 그 시절에 한글로 최현배 이름 석 자는 물론이고 “한글이 목숨”이라 쓴 것은 상당한 위험을 안고 쓴 것이다. 이 방명록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음식점주인이었다고 했는데 요즈음으로 치면 그냥 된장찌개 집은 아닌 것 같다. 아마도 요정이거나 단골들만 드나드는 음식점일 수 있다. 거기 드나드는 사람들과 주인은 거의 “신의”로 맺어진 사람들이었을지 모른다. 그래도 안심하긴 어렵다. 서명 중 일본어 글씨 2점이 있었다는데 그들이 첩자가 아니었길 다행이다. 첩자가 아니라 일본인이면서 한복을 입고, 한국민예품을 사랑하다, 한국에서 죽어 망우리에 묻힌 아사가와다꾸미(淺川巧) 같은 사람이라면 다행이다.
거두절미하고 엊그제 예를 하나 들겠다. 아는 분의 바깥어른이 돌아가셔서 장례식장에 갔는데 방명록이 놓여있어 준비된 붓을 들고 이름 석 자를 쓰려 하니 모두 한자로 쓰고 있었다.
하필 방명록의 한가운데에 이름을 써야 해서 모른 체하고 한글로 “이윤옥”이라 쓰면서도 방명록의 “반항아”같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2010년 아주 평범한 곳에 놓인 방명록에 이름 석자 쓰는 것도 모두 “한자” 일색이고 그 속에 이름 석 자를 한글로 쓰려니 혼자 잘난 체(?) 한다고 상대가 느끼겠구나 싶은데 하물며 1932년이랴! 이름 석 자도 아니고 “한글이 목숨”이란 또렷한 글까지 써넣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윤동주는 일본 땅에서 한글로 시를 쓴다는 이유로 잡혀가 죽음을 당했다. 일본의 식민지 옥죄기가 본격화되기 시작하여 학교에서 조선어 사용금지와 잇따른 신문폐간, 조선글 검열, 창씨개명이 진행되어 간 것은 “한글 말살”에 이은 궁극적인 “조선인 말살” 정책의 일환이었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이치이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글이 있어 소개한다.
“일제시대에도 줄기차게 한글 동인지와 한글학회가 계속 존재했지요. 또한 한글표기의 우리말로 된 레코드도 나왔으며 동경에도 원판이 판매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우리말을 사용한다고 체포하거나 제재를 가하지도 않았지요.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것처럼 대대적인 한글탄압은 존재하지 않은 것 같네요. -다음- "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한글로 글을 쓰되 “검열”에 걸려 “너를 사랑해”라고 못쓰고 “거시기 알지?” 이렇게 썼다면 이것이 한글을 제대로 쓴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 이효석의 첫 직장은 총독부의 검열부서였다. 조선인이 동포의 글을 검열하는 자리였다. 웬만하면 봐 줄 일이지 얼마나 철저히 검열을 했으면 소설 응모했던 소설지망생이 어느 날 이효석과 길거리에서 마주쳤을 때 “이 개만도 못한 놈아”라는 욕을 퍼부었을까? 한글을 일부 쓰게 했던 것과 생각을 마음대로 펴지 못하게 했던 것은 다르다. “생각을 마음대로 펴지 못하고 사상범으로 잡아들이고 검열해서 잘라버리는” 현실에서 껍데기로만 남은 한글을 가지고 “한글을 못 쓰게 한 적이 없다.”라는 구실로 써먹으려는 일제의 흉악한 저의를 잊고 한국인이 그것을 앵무새처럼 받아들여 “일제가 한글을 못 쓰게 한 적이 없다. 한국인의 피해망상이다.”라고 한다면 이는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딱한 생각이며 일제가 노리는 함정에 빠진 꼴이다. 이번 외솔 기념관에 전시될 외솔 선생의 “한글이 목숨이다”라는 방명록 기록은 그런 뜻에서 매우 소중하다. “영어가 목숨이고” “한자가 목숨”인 이 시대에 말이다.
방명록에 대한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풀이를 보자. "방명록(芳名錄) : 어떤 일에 참여하거나 찾아온 사람들을 특별히 기념하기 위하여 그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 놓는 기록. 또는 그 책. ≒방함록 "이라고 풀어놓았다.
방 ‘芳’ 자는 꽃을 뜻하고 향기를 뜻한다. 방명이란 “꽃다운 향기를 품은 이름”을 써주시면 앞으로 늘 기억하겠다는 뜻일까? 방명록에 이름이 없으면 앞으로 “향기롭지 못하다”는 것일까?
일본어국어대사전 <大辞泉>에 보면, ‘방명, 호우메이, 芳名’은 상대를 존경하여 그 이름을 일컫는 말이며 “존함은 이미 들었습니다.”라는 예문으로 쓰인다. 여기에 ‘録’이 붙어 ‘방명록’이 된 것이다. <방명록> 같은 말 말고 더 좋은 우리말은 없을까?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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