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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재란, 코무덤을 욕되게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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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조(본지 칼럼위원,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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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8월 25일(화) 13:21 [인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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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정유재란 당시 조선인의 코를 베어다 묻고 무거운 돌덩어리를 봉분 위에 얹은 만행의 현장 교토 코무덤. | ⓒ 인제신문 | |
지난주 20일 자 한 일간지에는 '타국서 400년 조선의 넋, 이제 한 푸시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그 기사는 지난 13일 일본 교토의 이총(耳塚․귀무덤)에서 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이사장 한양원)가 그들의 넋을 기리는 위령제를 열었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또 14일 자 연합뉴스엔 '만행 사과하고파…귀무덤 지킨 日노인'이란 기사가 보인다. 기사는 "400여 년 전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히데요시(豊臣秀吉)의 명을 받은 왜군들이 조선인 12만 6천여 명의 귀나 코를 전리품으로 베어와 묻어놓은 '귀무덤'(耳塚이총미미즈카)이다."라고 썼다. 최근 광복절을 맞아 교토의 '귀무덤' 기사는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그런데 과연 이 무덤은 '귀무덤'이 맞는가?
이 문제에 대해 단호하게 '이 무덤은 코무덤이다'고 외친 이가 있다. 그는 바로 《다시 쓰는 임진왜란사, 1996, 학민사》를 쓴 고 조중화 씨이다. 역사학자도 아닌 평범한 약사 신분인 그가 평생을 바쳐 오사카성 천수각, 야마구치현 문서보관소, 도쿄대학 사료편찬소, 가고시마현 역사자료센터 등 일본 구석구석을 수소문 끝에 찾아다니며 밝혀낸 코무덤의 진실에 대하여 우리는 고개를 숙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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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코 1,551개를 잘 받았다는 영수증. | ⓒ 인제신문 | |
그는 정유재란 당시 풍신수길의 부하로부터 받은 '코 영수증'과 풍신수길이 해당 부대장에게 보낸 감사장을 결정적인 증거로 내놓는다. 수많은 문헌과 자료 속에는 풍신수길의 코베기 명령에서부터 코를 베어 소금에 절여 날라다 묻은 기록까지 완벽한 증거품이 있다. 그 자료 속에는 어느 한 곳에도 귀라는 말은 없으며 코를 베었다는 기록뿐이다. 따라서 그 무덤에 묻혀 있는 것은 귀가 아니라 분명한 코라고 조중화 씨는 외치는 것이며 일본 측 문헌에도 코무덤임은 많은 문헌에서 증명되고 있다.
그러면 코무덤이 분명한데도 왜 귀무덤으로 둔갑했을까? 이는 에도시대(1603년~1867년) 초기의 유학자 하야시 라산(林羅山)이 코무덤이 너무 야만스럽다며 귀무덤이라고 부르자고 한 뒤 귀무덤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 교토시가 조금은 쑥스러웠는지 그 무덤의 설명판에 '귀무덤(코무덤)'이라고 함께 적어놓았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에 있다. 한국의 언론이나 지식인들이 앞의 기사 예처럼 그 무덤이 마치 귀무덤인 것처럼 자꾸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일반 대중이야 분명히 코를 묻은 '코무덤'인데도 '코무덤'이 아닌 '귀무덤'인줄 알 수밖에 없다.
우리 조상은 정유재란 때 통한의 죽음을 당했다. 그뿐만 아니라 풍신수길은 잔혹하게 코를 베어다 자랑스럽게 묻었다. 그래서 그 조상의 원혼은 남의 땅에서 구천을 떠돌고 있다. 그런데 그 원혼을 위해 제사를 지내지 못할망정 코가 아닌 귀를 묻어놓은 것처럼 왜곡해서 쓰고 또 쓴다면 그게 어디 후손된 도리일 것인가? 참혹한 역사를 되뇌자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사실을 왜곡해서 구천을 떠도는 원혼들이 또다시 통곡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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