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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옥,김영조의 '일본 속의 한국문화 톺아보기' <3> <코무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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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저게 뭐야?”…“저게 조선인 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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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20일(화) 15:50 [인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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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인제신문 | |
1997년은 풍신수길이 교토에 통한의 “코무덤”을 만든 지 400주년 되는 해였다. 그 400주년을 맞아 교토 코무덤 앞에서는 추도식이 열렸다. 이어서 임진왜란과 코무덤을 연구한 전문가들이 학술토론회를 열었는데 이날의 토론회를 일본어판으로 엮은 한 권의 책이 1998년 발간된《수길․귀무덤․400년(秀吉․耳塚․四百年), 김홍규 편저, 일본 웅산각 , 1998》이다.
책 제목이 “耳塚” 곧 귀무덤으로 표기되어 있어 참으로 유감스럽지만 이 책에는 누키이(關井正之)씨를 비롯한 일본인 3명과 박용철 씨를 비롯한 3명의 한국인이 각각 임진왜란과 풍신수길 그리고길 그리고길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우리는 이미 코무덤(2편)에서처럼 풍신수길이 정유재란의 전공(戰功)으로 베어 간 조선인의 코무덤을 귀무덤으로 잘못 부르고길있는 것을 지적하며 한평생길 그리고길의 진실을 밝히려고 전력투구한 재야사학자 고 조중화씨의 《다시 쓰는 임진왜란사》를 소개한 바 있다.
코무덤 조성 400주년 학술토론회를 토대로 엮은 책 《秀吉․ 耳塚 ․ 四百年》에서 <코무덤>을 다룬 한일 학자들의 핵심 주제는,
“1) 귀무덤이냐? / 코무덤이냐?
2) 묻힌 코(귀)는 몇 개냐?”가 중심이었다.
그리고 토론회에서 연구자들의 주장은 약간씩 다르기는 하나 대체로 다음 부분에서는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1) 풍신수길이 “코베기 명령”을 내린 것은 정유재란 때이며 조선인의 코를 베어와 묻은 이 유는 후세에 자랑하기 위한 것이다.
2) 처음에 코를 묻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잔혹을 빌미로 에도시대 학자 하야시라잔이 <귀무덤>으로 바꿔 부르자 한데서부터 <귀무덤>으로 불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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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인제신문 | |
그러나 이 학술토론회 이전에도 메이지 시대에 이미 도쿄대학 호시노 박사가 그의 논문에서 《교토 코무덤은 귀무덤이 아니라 코무덤이다》라고 명확히 밝혔으며 나카오히로시 씨 역시 <코무덤>의 결정적인 1급 사료인 깃가와가 문서(吉川家文書)와 나베지마가 문서(鍋島家文書)에서 <코영수증>은 있어도 <귀영수증>은 없다며 <코무덤>임을 단정하고 있다.
또 결정적인 증거는 교토시에서 세운 <코무덤> 안내판이다.
교토시 <코무덤>안내판에는 에도시대 학자 하야시라잔이 “너무 잔학하다.”라며 완곡한 표현인 <귀무덤>으로 하자 해서 이때부터 <귀무덤>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그 유래를 분명히 적고 있다. 이것은 하야시라잔의 주장 이전에는 “코무덤”이었음을 여실히 증명하는 것이다. 또 하야시라잔의 말을 따라 이후 “耳塚” 곧 “귀무덤”으로 써놓았던 것을 교토시가 코무덤의 왜곡을 인정한 것인지 2009년 7월 19일 현재는 귀무덤(코무덤)으로 바꿔놓았다. 곧 “코무덤”을 추가해 넣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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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인제신문 | |
물론 풍신수길의 코베기는 그의 주군 오다노부나가에게서 배운 솜씨이다. 오다노부나가는 남녀 2,000명을 죽이고 신체에서 코를 베었다는 기록이《신장기(信長記)》에 있다고 나카오씨는 말하고 있다.
풍신수길이 오다노부나가 휘하에 있을 때 이미 코베기를 잘하여 우수한 장수로 뽑힌 적이 있으며 임진왜란 직후 일본의 기독교박해 때인 1596년엔 26명의 성인(聖人) 순교 때에도 코를 베게 한 사실이 있다.
또 토론회에서 금병동씨는《본산풍전전수안정부자전공각서(本山豊前守安政父子戰功覺書)》라는 책의 내용을 들어 풍신수길이 “병사와 민간인을 가리지 말고 죽이고 여자는 물론 갓 태어난 어린이까지 남기지 말고 죽여서 그 코를 베라”라고 했다면서 금수보다 못한 일본군의 행위에 치를 떨었다.
코를 묻었으면 코무덤이요, 귀를 묻었으면 귀무덤이다. 이 문제는 잔학성과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에 아주 중요하다. 따라서 위의 정리된 자료를 종합해보건대 풍신수길의 의도적 코베기 명령에 의해 만들어진 <코무덤>을 <귀무덤>이라 부르는 일은 잘못된 것이다.
이렇게 베어진 코는 조선에서 일본에 어떻게 운반되었을까?
베어진 코는 일단 배편으로 나고야까지 보내졌고 나고야에서는 오사카까지 다시 배편으로 그리고 오사카에서 교토까지는 육로를 이용하였는데 길가에는 개선장군처럼 큰 수레에 싣고 지나가는 조선인의 베어진 코를 보려고 입추의 여지없이 사람들이 나와 구경했다고 《朝鮮倭寇史》를 들어 금병동씨는 전하고 있다.
자, 그러면 또 하나의 쟁점인 베어진 코의 수에 대한 견해를 보자.
세계인권문제연구센터 나카오히로시 교수는 상당히 객관적인 입장에서 코무덤에 대해 접근하고 있는데 그는 코베기 기간을 정유재란 때인 1597년 8월부터 10월까지로 보고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시각은 조중화 씨의 “코베기가 정유재란 때의 만행”이라는 주장과 일치한다. 그러나 교토시 코무덤에 묻혀진 코 숫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서로 다르다.
나카오히로시 31,477개다. 세계인권문제연구센터장
금병동 10만 개 이상이다.조선대강사
호시노박사 5만 개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다. 도쿄대교수
조중화 3,276개 재야사학자
박삼중스님 126,000개 스님
김문길 126,000개 부산외대교수
왜 이렇게 교토시 코무덤에 묻힌 코 숫자가 차이가 나는 것일까? 그것은 후세에 기록하는 사람들의 부풀리기 내지는 착오 등 여러 이유를 생각할 수 있다. 이는 당시 전쟁에 참여했던 일본 군감끼리 한반도 전선 허위보고를 놓고 벌어진 고소고발사건(우스기시사, 臼杵市史, 참조) 등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죽은 사람 수와 코 영수증의 허위문서 작성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므로 교토시 코무덤에 묻힌 정확한 코 숫자는 학자들의 더 정밀한 연구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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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 부분은 오래도록 밝히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한편, 교토시 외 지역에 몇 군 데서 발견되었다는 코무덤은 아직 명확한 근거가 없다. 또 당시 상황으로 볼 때 풍신수길한테 보내지지 않고 개인이 빼돌렸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다만,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베어진 코 숫자를 근거 없이 부풀려서는 안 되며 또한 숫자도 중요하지만 <코무덤>에 묻힌 것이 과연 <귀>냐 <코>냐의 문제이다.
여러 문헌에서 확인된 바와 같이 교토 코무덤에는 코만 묻혀있을 뿐 귀는 없다는 것이 명확한 사실이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이 무덤에 대한 코냐 귀냐의 논쟁은 막을 내려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풍신수길이 이 무덤을 만든 이유를 따져 볼 때 하야시라잔의 주장대로 <귀무덤>이란 완화된 이름으로 불러서는 안 된다. 그것은 일본이 원하는 바를 스스로 용인해주는 꼴이기 때문이다.
통한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은 끝난 지 400년이 넘었다. 그리고 1997년엔 400주년 추도식과 학술토론회까지 열렸다. 그러나 전쟁의 비극인 <코무덤>에 대해서는 아직도 왜곡투성이인 채 한 술 더 떠 우리 스스로 역사 기록에도 없는 <귀무덤:이총,미미즈카>라는 용어를 만들어 계속 쓰고 있으니 이 어찌 통탄스럽지 아니하랴!
* 바로잡음: <제2편>에서 교토 코무덤에 묻힌 코의 수는 214,752개라고 <다시 쓰는 임진왜란사>에서 조중화 씨는 밝혔다고 필자가 썼으나 (144쪽 인용) 이 기록은 묻힌 코가 아니고 1598년 1월경 조선인과 명나라 사람의 베어진 코였음을 바로잡는다.
그리고 이 책이 나온 2년 후에 《바로잡은 임진왜란사, 삶과 꿈, 1998》에서 조중화 씨는 교토시 코무덤에 묻힌 코는 3,276개(4쪽)로 정정하였다. 그 이유는 정유재란 후 귀국한 일본 군감 사이에 코영수증을 포함한 서류 위변조 고소고발 사건을 밝혀내는 과정에서 베어진 코 숫자의 부풀리기를 지적하고 그 후 연구 결과 이러한 숫자가 나왔다는 것을 밝혔다.
<제4부> 통한의 코무덤 마지막 편이 기다립니다.
[글쓴이]
* 이윤옥 (59yoon@hanmail.net)(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 소장)
* 김영조 (sol119@empal.com)(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소장)
* 이 글에 대해 궁금하신 점이나 참고될 만한 내용이 있으시면 언제라도 위 누리편지로 연락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 글이 필요하신 분은 꼭 미리 알려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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