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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옥․김영조의 '일본 속의 한국문화 톺아보기'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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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국보 1호 목조미륵보살반가상<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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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03일(화) 14:09 [인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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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자랑하는 보물은 무엇일까? 우리는 교토, 나라, 오사카 유적지를 답사하면서 일본인의 자랑인 보물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혹시 교토 광륭사(廣隆寺, 고류지)의 목조미륵보살반가상?
일본 광륭사 책자에도 어김없이 국보 제1호라고 자랑하고 있다. 또 많은 이들이 그에 감탄한다. 특히 독일의 유명한 철학자 야스퍼스는 이 불상을 보고 크게 감동한 나머지 "고대 그리스 신(神)들의 조각과 로마 시대에 만든 수많은 조각품은 아직 완전히 인간적인 냄새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이 불상은 지상에서 모든 시간적인 것의 속박을 초월해서 이루어 낸 인간 존재의 가장 맑고 원만하고 영원한 모습의 표상이다."라며 절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하지 않는가? 과연 그럴까? 오래전부터 이 불상을 보고 싶었으며 고대 그리스, 로마의 조각을 두루 섭렵한 야스퍼스만큼은 아니더라도 직접 눈으로 확인 한 번 해보자는 심정으로 광륭사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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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인제신문 | |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자"
2009년 7월 18일 아침 아침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 회원들과 서둘러 이 목조미륵보살반가상(木造彌勒菩薩半跏像,이하, 미륵상)이 있는 교토시 서부 우즈마사거리에 있는 광륭사를 찾았다. 버스에서 내려 광륭사로 들어가는 길은 그저 한적한 도시 변두리란 느낌이다. 절은 자동차들이 빈번하게 다니는 길옆에 붙어 있어 우리가 찾았던 다른 절들 곧 청수사, 금각사 등에 견주면 고즈넉한 산사 느낌은 전혀 없다. 또 동대사, 법륭사 등 규모가 큰 절에 비해 광륭사의 첫인상은 그저 소박한 절이라는 느낌뿐이었다. 국보 제1호를 소장하고 있는 절치고 명성에 걸맞지 않게 한적하기 그지없는 곳이다.
절의 정문인 남대문(南大門, 仁王門)으로 들어가자 바로 교토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라는 강당(講堂)이 나오고, 강당 뒤쪽으로 들어가면 성덕태자를 모신 상궁왕원태자전(上宮王院太子殿)인 본당(本堂)이 있으며 그 뒤로 미륵상을 전시해 놓은 영보전(靈?展)이 보인다. 700엔의 입장료를 내야 하는 이곳은 역시 사진촬영은 못 한다. 덴표(天平)시대에서 가마쿠라(鎌倉)시대까지의 불상, 불화, 미술 공예품, 고문서 등이 다수 보관되어 있어 미술학도라면 한 번쯤 들어가 볼만하다는 영보전. 여기 있는 미륵상은 1951년 6월 9일 일본문화재위원회에서 국보로 지정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일본의 국보는 1호, 2호. 3호 식으로 매기지 않기 때문에 광륭사 불상은 한국의 숭례문처럼 그저 조각품 중 맨 먼저 등록했다는 의미밖에 없다.
한국의 웬만한 마을에는 미륵이라 불리는 돌부처가 거의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과거 우리에게 '미륵'은 친근한 존재였다. 그 까닭은 새로운 세상을 약속한 미륵신앙이 고통스러운 현실을 살아가던 민중들에게 위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고려 말, 조선 초에 향나무를 바닷가 개펄에 묻어두는 '매향의식(埋香儀式)'이 있었다. 그것은 그때 자주 출몰하던 왜구의 침탈에 고통을 받던 민중들이 침향을 정성으로 준비하여 자신들을 구원해줄 미륵이 오기를 비손하는 뜻이었다. 묻은 향나무가 수백 년이 지나면 침향이 되고, 침향이 된 뒤에는 '서해에서 용이 솟아오르듯이' 스스로 물 위로 떠오른다고 믿었다.
이러한 신앙의 미륵보살이 바로 이곳에 있었다. 도솔천에 살며, 석가가 죽은 지 56억 7천만 년 뒤에 세상에 나타나 중생을 구한다는 보살. 반가 곧 오른발을 왼쪽 허벅다리 위에 얹고 생각하는 모습의 보살. 영보전에 들어가서 다른 불상은 아예 쳐다보지 않고 오로지 미륵상을 찾기에 바빴다. 여기에 온 목적이 바로 그것이 아니던가?
지상에서 가장 순진무구한 불상, 그리스, 로마 조각상이 풋내나는 것이라면 광륭사 미륵상은 지상, 천상 최고의 조각품 한마디로 이 이상 논하면 되레 불경죄로 벌을 받을 듯한 최고의 찬사를 받으며 한국에서 예까지 와 1,400년을 미소 짓고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했다. 이 불상을 보려고 한국인들은 불원천리 서울에서 오사카 간사이공항으로 그리고 그곳에서 전철 타고 버스 갈아타기를 수차례 끝에 불상과 마주한 것이 아닌가? 미륵상의 수명을 고려한 것인지 촉수 낮은 희미한 영보전 안 깊숙한 중앙에 미륵상은 은은한 미소로 참배객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너무나 극찬 된 얼굴인지라 찬찬히 올려다도 못 본 채 무릎 꿇어 하염없는 눈물만을 흘리는 사람들 틈에서 나도 마음의 눈물을 닦아야 했다.
광륭사 측에서는 참배객을 위해 미륵상 앞에 좁다란 다다미를 2미터쯤 깔아 놓고 무릎 꿇고 기도할 수 있게 해놓았다. 한국인으로 보이는 참배객 중 중년 여성은 소리내어 울기도 하였다. 아! 우리를 울리던 목조미륵보살반가상! 저 미륵님은 일본땅 눅진 곳에서 한국인들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다.
그런데 고개를 들어 미륵님의 얼굴을 찬찬히 살핀 뒤 뇌리에는 하나의 작은 의문점이 생기고 말았다. 이 미륵상이 한국 국보 제83호와 똑같다고들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몸체나 닮았을까? 얼굴모습은 다르게 보였던 것이다. 이 불상을 보고 간 많은 국내외 학자들, 연구가들, 사진가들…. 심지어는 언론까지도 가세해 모두 한결같이 꼭 닮았다.를 외쳤던 탓일까. 얼핏 보면 닮은 듯하지만 닮지 않은 구석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영보전을 나온 것이 한 달 전 일이다.
'꼭 닮았다'는데 진짜인가
교토에서 돌아와 나는 이 미륵상에 대한 국내의 반응을 조사해보았다. 이곳에 다녀간 한국의 누리꾼들은 모두 한목소리로 한국 국보 제83호 금동미륵불과 꼭 닮았다.를 연호했으며 이 말들은 이곳저곳 누리집을 드나들며 확대, 재생산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조선일보사에서 나온 이 미륵상에 대한 ≪일본 속의 한민족사, 2008≫ 책에는 다음과 같은 찬사의 글이 있다.
"웃는다. 입만 웃는 것이 아니다. 얼굴 전체가 웃고 있다. 웃으려고 의식한 것이 아니다. 삼매(三昧)에 몰입하면서 느끼는 환희로 기쁨이 마음에 넘치면서 얼굴이 환하게 피어난 것이다. 조각한 것이 아니다. 적송 그 나무속에 들어앉아 삼매의 희열이 바깥으로 배어나면서 완성된 모습이다. 합장하고 가슴 두근거리며 바라다보아도 전혀 인위(人爲)를 감지할 수 없다. 전혀 구애됨이 없는 천연스러움이다. 순수 무구한 지락(至樂)의 형상을 저렇게 표현한 것이다."그도 그럴 일이다. 어느 누가 감히 이 미륵상을 두고 한국의 국보와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가? 감히 언급할 정도가 안 된다. 이렇게 감동을 하고 있으니 어찌 그 누가 손사래를 칠 수 있으리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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