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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옥의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일본말 찌꺼기 <57>

자전거를 끌고 “고바위”를 올랐다

2010년 10월 19일(화) 13:38 [인제신문]

 

↑↑ 이윤옥 칼럼위원(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 소장)

ⓒ 인제신문


자장면 값이 오백 원에서 육백 원으로 올라가던 때였나? 나는 덕천동에서 청요릿집 배달을 했다. 면을 치는 소리를 들으면 왠지 후련했다. 교복도 자율화가 되어 공부에 대한 미련도 조금 옅어져 그냥 되는 대로 살고 싶었다. 그날따라 반주로 막걸리 반통을 먹어서 그랬는지 빈 그릇을 찾아오기 위해 '고바위'(언덕)를 자전거를 끌고 올라갔다. 시원스럽게 내리닫던 자전거에서 브레이크가 튕겨지던 느낌. 도로 가에서 손님을 기다리던 택시에 자전거가 대신 죽고 살아남긴 했지만 처음으로 죽음의 냄새를 뜨거운 짬뽕 국물처럼 뒤집어 쓴 것이다. 그때 난 삶의 저쪽이 아니라 이쪽이 죽음이라고 생각했고 엉겁결에 몸 작은 애인의 뺨을 때리고 난 후의 기분 같은 어른들의 후회를 배웠다고 생각했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전거를 서른이라는 비탈길에서 틈틈이 타게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 “내 마음속의 이곳” 부산일보 -

고바위를 흔히 언덕빼기쯤으로 잘못 알고 쓰는 경우가 많다. 예문을 찾다 보니 어느 시인의 글이 올라와 있다. 이 시인은 고바위라 써놓고 안심이 안 되는지 괄호 속에 “언덕”으로 다시 보충하고 있다. 시인 자신은 ‘고바위’로 많이 쓰고 있는 모양이다.

내가 “고바위”란 말을 많이 들은 것은 운전 연습할 때였다. 삼십여 년 전만 해도 운전면허 따기가 지금보다는 쉬웠다. 지금처럼 주행 시험이 없는 대신 면허시험장 내에서 주행과 기능시험이 이뤄졌는데 시험장 안에 그려진 주행코스에는 반드시 “고바위”가 있었다. 약간 언덕을 올라갔다가 내리막길이 나오고 이어서 건널목(횡단보도) 신호가 있는데 대개 이 부분에서 수험자들은 떨어진다. 이때 ‘저는 고바위에서 떨어졌어요.’ 같은 말들이 오갔던 기억이다.

“고바위” 이 말은 일본말이다. <다음 일어사전>을 보면, “こうばい [勾配] : 구배. 1 물매. 기울기. 경사 (지붕의 기울기 : 屋根の勾配) (경사가 급한[가파른] 비탈길: 勾配の急な坂道) 2 사면(斜面). 비탈. : 비탈을 오르다.(勾配を上がる)“로 나와 있다.

일본말 고바위는 한자로는 굽을 구(勾), 아내 배(配)를 쓰며 발음은 ‘코우바이’다. 이것을 우리는 ‘고바위’로 부르는 것이다. 일본어 앞머리에 오는 “카키쿠케코” 발음은 우리말에서 “가기구게고”로 발음된다. 쿄우토 (京都) - 교토, 코우바이(勾配) - 고바위가 그러하다.

문제는 우리말에 ‘언덕배기’를 가리키는 말이 있음에도 ‘고바위’라는 말을 쓴다는 점이다.

등산전문가이자 뛰어난 문화사가인 다니유우지(谷有二)는 그의 책 『일본산악전승의 수수께끼,1983, 미래사,도쿄』에서 말하기를 일본의 높은 산이름에 마루(maru,まる)가 붙는 것을 추적한 결과 한국어에 용마루, 산마루라는 말에서 ‘마루’가 높은 곳을 나타내는 말임을 알아내고 무릎을 친다. 또한, 일본 성곽에서 가장 높은 곳을 가리키는 ‘혼마루’ 역시 한국어에서 온 말이라고 단정한다.(위 책 45쪽) 유우지씨는 이어서 우리가 잊고 지내는 우리 토박이말을 속속들이 상기시켜준다. ‘턱’이라는 말도 그 중 하나인데 도로를 가다 보면 '턱이 유달리 높은 곳이 있다. 산중턱이라는 말로도 쓰인다. 그러고 보니 초등학교 앞 도로변에 약간 낮은 둔덕인 턱, 그리고 좀 더 높은 언덕, 비탈, 고개, 산마루(산은 한자말), 산꼭대기(산은 한자말), 산봉우리(산과 봉은 한자말)와 같은 말 등 높이를 이르는 말들이 즐비하다. 이런 판국에 뭐가 아쉬워 ‘고바위’같은 말을 들여다 쓰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인제신문 기자  inje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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