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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위해 희생했는데”…인제군, 정부 인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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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정부 한반도 흔적 지우기 앞장섰다는 비난받을만하다

이윤옥.김영조의 '일본 속의 한국문화 톺아보기' <30>

2010년 05월 03일(월) 11:14 [인제신문]

 

하타(秦)씨라면 일본 국보 제1호 미륵반가사유상이 있는 고류지(廣隆寺)를 건립한 진하승(秦河勝) 부부를 우리는 기억할 것이다. 하타(秦)씨는 전국 술신[酒神]을 모시는 신사로 유명한 마츠오대사(松尾大社)를 세웠을 뿐 아니라 오늘날 서부교토를 개척하고 저수지와 제방을 쌓아 기름진 옥토를 만들어 논농사를 풍요롭게 한 하타노이미키토리(秦忌寸都理)씨 일족이 떠오른다. 또한, 양잠기술과 직조기술을 발달시킨 하타씨를 기억하는 사람도 많다. 이노우에(井上滿郞) 교수의《도래인(渡來人)》과 같은 수많은 연구에 의해 “하타(秦)씨는 신라에서 도래한 사람들이다.”라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지금 아직도 일부에서는 “하타(秦)씨는 중국 진시황제의 후손이다.”라는 종전의 낡은 역사인식을 반영하는 곳도 있다. 후시미이나리대사 역시 누리집을 보면 “하타(秦)씨는 중국의 진시황제의 후손이다.”라고 맨 앞줄에 써놓고 있다. 그러나 무슨 속셈인지 뒷줄에는 “한반도의 신라인으로 추정된다”라는 말을 덧붙여 놓고 있다. 스스로 억지 주장임을 못 버리고 아직도 이런 미련을 고수하는 곳이 뜻밖에 많다는데 놀라게 된다.

↑↑ 후시미이나리대사 누리집 연혁에는 하타(秦) 씨가 조선반도 신라출신으로 추정된다고 쓰고 있으나 명백한 신라인으로 고쳐 써야 한다.

ⓒ 인제신문


위 누리집에 보면 하타씨의 출신을 ‘조선반도 신라지방출신으로 추정된다.’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적절치 못한 표현으로 ‘추정’이 아니라 ‘명백한 신라인’임을 떳떳이 밝혀주는 게 양심적이다. 신라계 한반도인이 세운 신사라고 밝혀놓는다 해서 우리가 달라고 할 것도 아니요, 기분 나쁠 일도 없건만 일본의 역사 유적지에는 언제나 그 유래를 감추는 게 태반이다. 이러한 현상은 1868년 명치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부쩍 심해진 것으로 그 좋은 예가 가나가와현 오이소(大磯)의 고려신사(高麗神社)이다. 명치정부 전까지 고려신사와 고려사가 나란히 사이좋게 있던 경내의 고려사(高麗寺)는 정부의 신불분리(神佛分離) 정책에 의해 폐사(弊寺)가 되고 고려신사는 고래신사(高來神社)로 바뀌어 발음도 다카쿠신사로 바뀌었으니 일본정부가 나서서 한반도 흔적 지우기에 앞장선 것이라는 비난을 받을만하다.

그러나 일본 역사서인 <고사기>와 <일본서기>등의 문헌을 폐기하지 않는 한 한반도와 관련된 일들을 감추고 지울 수는 없을 것이다. 왕인박사의 한자(漢字) 전수를 비롯한 불교 전래, 국보급 불상으로 자리매김한 각종 불상, 뛰어난 고승, 세계문화유산에 빛나는 법륭사 따위 절과 건축술, 역법(曆法), 미술, 조각, 양잠업을 기초로 한 직조기술, 저수지 등의 관개 시설 등 8세기 이전의 뛰어난 선진 기술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는 문헌이야말로 백 마디 말보다 확실한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랴!

일본인 학자 중에는 더러 이러한 문헌을 파내어 사실을 밝혀주고 있지만 그것은 새로운 학설이 아니며 이미 있는 문헌을 감추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나 그런 목소리라도 고마운 것은 고마운 것이다. 아쉬운 것은 그 많은 문화와 우수한 선진 문명을 전수한 조상의 업적과 흔적을 후손인 우리가 너무 등한시 한 점이다. 멀리 찾아볼 것도 없이 후시미이나리대사 역시 한반도 조상인 하타씨들이 세운 신사가 아니던가! 자신들의 역사를 남이 써주길 기다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우리가 꼭 그 꼴이다, 일본이 써 주지 않는다고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찾아내고 밝히는 작업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 뒤를 이을 후손들은 우리 세대보다 똑똑하니 고대 일본에 전해진 문명의 흐름에 대한 흔적을 소상히 찾아서 기록 할 것으로 믿는다.

↑↑ 이나리마츠리(稲荷祭) 모습으로 신사에 모셔진 신들이 가마타고 시내나들이가는 모습. (伏見稲荷大社 소장)

ⓒ 인제신문


후시미이나리대사를 세운 이들은 한반도 출신의 하타(秦) 씨라는 것은 앞서 밝혔다. 그렇다면, 현재 이 신사에서 모시는 신의 이름은 무엇일까? ‘농사의 신’이면 농사의 신으로 여기면 그만이지만 일본 신사에서는 자신들의 신사에 모시는 신에게 이름을 전부 붙이고 있다. 후시미이나리대사에 모시는 신의 공식명칭은 우카노미타마노신(宇迦之御魂神으로 이 신은 고사기<古事記>에 나오는 신라의 신 스사노미코토(素戔男尊)계에 등장하는 신이다. 고대일본을 일군 사람들은 한반도의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인의 공헌이 크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史實)이지만 상고(上古)로 올라가 신화시대로 거슬러 가도 그 짜임새는 여전히 한반도계 신들의 이야기다. 이런 것을 다 뺀다면 일본이란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건 사실이다.

↑↑ 4월 12일 파종제(왼쪽)와 6월 10일 모심기(가운데), 10월 25일 가을걷이(오른쪽)는 “농경신”을 모시는 후시미이나리대사의 중요한 행사이다.

ⓒ 인제신문


후시미이나리대사의 제신(祭神) 우카노미타마신은 곡물과 식물을 관장하는 신이다. 말하자면 곳간을 쥐고 있는 신인 셈이다. 잘 모시지 않으면 모두 굶어 죽을 판이다. 전통시대에는 농사가 최고였지만 현대에는 장사하는 이들도 늘어나 상공업의 신으로도 떠받들어지고 있다. 시대에 따라 신의 위상도 달라지는 것이 재미나다. 그뿐만 아니라 이나리신(稲荷神)은 맥주회사나 백화점 옥상, 공장부지 등에도 터줏신으로 모셔지는 예가 많은데 도쿄 니혼바시미츠코시(日本橋三越) 백화점 옥상의 미메구리신사(三囲神社) 등은 그 좋은 예이다.

↑↑ 일본최대의 미츠코시백화점 본점(왼쪽)과 옥상에 자리한 후시미이나리신사의 제신을 모시는 미메구리신사 분사(分社), 별원(別院)이라고도 부른다.(오른쪽)

ⓒ 인제신문


도심 빌딩 숲속 유명한 백화점 옥상에 자리한 곡물의 신 우카노미타마신을 모시는 미메구리신사의 모습은 일본인의 ‘신사참배’ 의식을 잘 보여주는 예이다. 미츠코시(三越)는 현재의 미츠이(三井) 그룹의 전신으로 이 그룹의 각 계열 사장단은 메구로구(墨田区)에 있는 미메구리신사에 참배한다고 한다. 농업번창과 상공업 번창을 기원하는 마음은 미츠이 그룹의 간부들만의 일은 아니라고 본다. 절에서 하는 정초 기도나 기독교에서 하는 신년예배, 정초 해맞이 등도 모두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것은 국경을 초월한 일이며 과거 현재를 뛰어넘는 그야말로 시공을 초월한 인간의 간절한 바람이 만들어 낸 지극히 평범한 문화일 것이다. 다만, 그것을 담당하는 것이 일본에서는 “신사(神社)”일 뿐이다.

후시미이나리대사의 품격은 827년에 이나리대신(稲荷大神)을 종오위하(従五位下) 품계를 시작으로 그 품격이 급속히 올라가 927년 헤이안시대 법전인 연희식<延喜式>에는 전국 3,100개 신사 중에 최고의 격식을 갖춘 “명신대사(名神大社)” 반열에 오르게 되며 이어서 최고위인 정1위(正一位)에 이른다. 또한, 황실의 신앙도 두터워 1072년 3월 26일에는 후삼조천황(後三条天皇)이 친히 행차했으며 이어 좌대신 후지와라(藤原頼長)씨 등을 포함한 귀족들의 참배도 줄을 이었다. 이러한 황실과 귀족들의 참배에 이어 막부 정권시대에는 권력자들의 발길도 이어져서 막대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오늘날과 같은 탄탄한 신사로 자리 잡게 되었던 것이다.

특히 에도시대(1603~1868)에는 도리이(鳥居) 봉납(捧納, 신사에 바치는 것)이 유행하여 후시미이나리대사 뒤편의 이나리산(稲荷山)에는 신자들이 기부한 만여 개의 도리이가 있으며 특히 센봉도리이(千本鳥居)이는 이 신사의 명소가 되고 있다. 경내에는 오츠카(お塚)라 불리는 석비(石碑)가 무더기로 놓여진 곳이 있는데 석비에는 ‘백호대신(白狐大神), 백룡대신(白龍大神) 이라고 쓰여 있는 것이 많은데 이는 명치정부의 신불분리(神仏分離, 신사와 불교를 분리시킨 정책) 이전의 형태가 보존되고 있는 것으로 이곳에서는 반야심경을 외우고 있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계속>

인제신문 기자  inje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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