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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위해 희생했는데”…인제군, 정부 인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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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쿠사신사는 하지씨와 어부형제 모시는 사당

이윤옥.김영조의 '일본 속의 한국문화 톺아보기' <34>-마지막 회

2010년 05월 31일(월) 08:45 [인제신문]

 

일본속의 한국문화 답사 회원들이 아사쿠사 센소지(浅草寺)를 찾아간 1월 23일 토요일이었다.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더 많이 몰려 온 것 같다. 가미나리몽을 지나 나카미세(상점가)를 지나면 본당이 나타난다. 그러나 지금 본당은 공사 중이다. 일본 대부분의 절이 그러하듯 예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 있는 것은 드물다. 대부분이 목재 위주인 가람들은 화재에 취약하다. 그를 입증 하듯 센소지도 창건 이래 크고 작은 화재를 여러 번 만났다. 그 뒤 에도시대에 대대적인 불사가 이뤄져서 본당과 5중탑이 1649년에 세워졌으나 이것은 1945년 3월 10일 미국의 도쿄대공습(東京大空襲)으로 불타고 말았다. 조선을 비롯한 아시아 제국을 침공하여 강제로 국권을 빼앗고 국민을 괴롭히던 만행을 응징한 것이 이른바 도쿄대공습이다. 패전을 다섯 달 앞둔 시점이다. 이후 다시 중창하였으나 현재는 다시 보수 중에 있다.

아사쿠사 신사(浅草神社) 는 센소지(浅草寺) 바로 옆에 있다. 같은 한자 “浅草”를 쓰면서 절은 “센소”로 읽고 신사는 “아사쿠사”로 읽는 것은 한국의 “대전”과 “한밭” 관계로 보면 된다. 같은 한자를 한자음과 일본 고유음으로 읽는 것이 재미나다. 명치정부 이전에는 이 두 시설이 한울타리 안에 있었지만 명치 때 단행된 신불분리정책(神佛分離政策)으로 각각 신사와 절이 분리되었으며 이때 “아사쿠사”라는 음을 신사가 따르고 절은 한자 발음인 “센소”를 따른 것으로 생각된다. 비록 한울타리에서 벗어났다고는 하지만 센소지 경내에 나란히 자리한 아사쿠사신사는 센소지 본당 바로 왼쪽에 있다. 건물이 붙어 있듯이 아사쿠사신사와 센소지는 유래도 같이 공유한다. 아사쿠사 누리집에는 센소지 누리집과 같은 히노구마 형제의 불상 건진 이야기가 똑같이 올라있다. 622년부터 1868년 명치유신 때까지 이 두 사원은 사이좋은 어부 형제처럼 운명을 같이 해왔다. 다른 점은 신불분리 후 두 사원에서 모시는 신이 다르다는 것일 뿐 원형은 한 뿌리였다.

↑↑ 센소지 옆에 있는 아사쿠사 신사, 기와지붕이 어딘지 한국 냄새가 풍긴다.

ⓒ 인제신문


관동최고의 절인 센소지에서는 관세음보살상을 모시고 있으며 아사쿠사에서는 히노구마노하마나리와 다케나리 두 형제 그리고 하지토모(土師中知) 이렇게 세분을 신으로 모시고 있다.

센소지 유래에서 밝혔듯이 이 두 형제와 마을의 원로 하지 씨는 한반도출신으로 아사쿠사신사는 이들을 모시는 사당이다. 하지 씨 사후에 하지 씨의 아들이 꿈을 꾸었는데 관음상이 나타나서 이르기를 히노구마 형제와 아버지인 하지 씨 세 명을 모시는 사당을 지으라고 한 것이 이 신사의 유래다. 다만, 이 신사에 모시는 신이 벼슬하지 못한 평민이기에 신사의 격은 관동에서는 제일 낮다고 전해진다. 그도 그럴 것이 학문의 신을 모시는 교토의 천만궁, 신사나 술의 신을 모시는 마츠노오대사 같은 신사에 비하면 초라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찾아 간 날도 신사 안에서는 신관의 기도를 받는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신사의 격은 규모를 말하는 것일 뿐 실질적으로 주민들은 집 가까이 신사에 가서 자신들의 일상의 대소사를 의논하고 신관의 도움을 받고 살아가는 것이다.

명치정부의 신불분리정책으로 명치원년인 1868년에는 삼사명신사(三社明神社)로 부르다가 1876년에 현재의 아사쿠사신사로 정착했으며 현재의 본당은 덕천가강(徳川家光)이 보시한 것으로 1649년에 완성되었다. 본당은 지은 지 360여 년 된 건물로 문화재적 가치가 높으며 1961년 일본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센소지가 몇 번의 화재를 만난 것에 비하면 아사쿠사신사는 오랜 세월을 견디고 손상없이 오늘에 이르른 것이 기적 같다. 한국계인 하마구리 형제와 하지씨에 대한 지극 정성의 제사를 하늘이 알아준 것일까?

ⓒ 인제신문


↑↑ 센소지의 나카미세(상점가)에 나온 기모노 차림의 여인들(위) 여러 인형들(아래)

ⓒ 인제신문


관동에서 가장 오래된 절 센소지는 한국계 히노구마 어부 형제와 마을 원로 하지 씨의 전설이 깃든 곳으로 요즈음은 한국인들도 많이 찾는 곳이다. 무사시노의 너른 평야를 개척하여 오늘의 도쿄를 일군 것도 알고 보면 관세음보살의 법력 덕택일 것이다. 그러한 관세음보살상을 바다에서 건지고 절을 지어 모시고 공양을 한 것은 하지씨와 하마구리 형제이다.

우리는 세 명의 한국인 곧 히노구마형제와 하지스님의 전설이 깃든 센소지를 건성으로 돌아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비록 센소지 안내책자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우리가 우리 조상의 발자취를 등한시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남이 우리의 조상을 챙겨 주지는 않는 법이다.
센소지와 아사쿠사신사를 뒤로 하고 나오는 회원들은 저마다의 가슴에 어부형제의 전설을 고이 간직한채 기념품 사기에 여념이 없는 관광객들로 넘쳐나는 나카미세(상전거리)를 빠져 나왔다.

↑↑ 나카미세(상점가)에서 내건 호랑이해 장식판, 매년 바뀐다.

ⓒ 인제신문



【참고문헌】


1. 《日本百名社歲時記》, 窪寺紘一 ,1991,世界聖典刊行協會 刊
2. 《日本に残る古代朝鮮, 關東編》 段熙麟, 1978, 創元社
3. 《일본열도에 흐르는 한국혼》 김달수, 동아일보사,1993
4. 《 武蔵野を歩く》, 海野弘, 東京 , アーツ・アンド・クラフツ, 2006.12
5. 《 武蔵野市史 》, 武蔵野市, 1993,3
6. 《韓來文化の後榮》上, 韓國資料硏究所 刊, T金正柱, 1963
7. 《東京の中の朝鮮》 高柳俊南, 明石書店 刊, 1996
8.《日本神佛辭典》大島建彦 編者, 大修館書店, 2001
9.《日本寺院總攬》 吉成勇, 大日本印刷, 1992
10.《日本の神々 山城・近江》第5巻, 谷川健一, 白水社, 2000
11.센소지 위키피디어 사전
http://ja.wikipedia.org/wiki/%E6%B5%85%E8%8D%89%E5%AF%BA
12.센소지 누리집 http://www.senso-ji.jp/

★찾아 가는 길★
도쿄메트로긴자센(東京メトロ銀座線)을 타고 아사쿠사역에서 내려 5분 거리에 있다

인제신문 기자  inje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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