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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수 칼럼 / 한계령과 오색령 명칭에 관한 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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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6월 15일(화) 10:54 [인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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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정태수 칼럼위원(강원대학교 초빙교수) | ⓒ 인제신문 | |
요즘 한계령 명칭문제로 많이 뜨겁다. 양양군측서 한계령이란 명칭은 근본도 없고 1972년 군인들이 도로확포장공사를 하면서 아래 한계리(寒溪理)에서 명칭을 따서 임의로 붙인 것이라 원래의 이름인 오색령으로 되돌려야 한다고 주장하며 위원회를 구성하고 포럼을 개최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고, 인제군측서도 이에 대해 맞대응하면서 문제가 점차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지명은 옛 문화를 간직한 인문학적인 유산이며 옛 지명을 살려 지명의 영속성을 통해 문화적 긍지를 이어받고 전수하는 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과제인 것은 분명히 맞는 말이다. 역사 문화적으로 잘못된 명칭을 사용할 경우 지역의 이미지와 자긍심, 학생들의 교육 등에 결코 좋지 않은 것 또한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역사가 사실임을 바탕으로 했을 때 가능한 말이다. 역사란 말 그대로 우리 조상들이 지내 온 사실적인 흔적이다. 사실이 바탕이 되지 않았을 땐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지금 한창 논란이 되고 있는 한계령의 원래 명칭은 '바드랏재'이고 한문으로 표기하면 소동라령(所冬羅嶺)이다. 양양군측서는 소동라령(所冬羅嶺)과 오색령(五色嶺)을 동일시하여 한계령을 오색령으로 명칭을 변경해야한다고 하지만 실제 기록에 의하면 소동라령과 오색령은 서로 별개의 고개였다. 1700년대 후반에 만들어진 여지도(與地圖)에 보면 분명히 오색령은 소동라령과는 별개의 령으로 표시되어 있다. 또한, 1861년 김정호에 의해 완성된 대동여지도(大東與地圖)를 보더라도 한계령으로 표시되어있고 별도로 오색령이 남쪽으로 표시되어 있다. 그 외에도 여러 기록들에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이런 것들을 보면 "소동라령과 오색령이 있었으나 조선중기를 전후해 소동라령의 기능이 오색령으로 넘어 간 것으로 보이므로 소동라령은 오색령이다."라는 주장보다는 "소동라령의 또 다른 이름이 한계령이다."라는 것이 오히려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굳이 옛 지명을 찾겠다고 하면 차라리 소동라령이 더 적합할 듯싶다. 이것도 아니면 한계령을 기준으로 내․외설악이 나뉘니 설악령 이라고 하자면 코메디일까?
한계령은 양양군내에 있는 것도 아니고 인제군과 경계에 있으므로 이처럼 양쪽 이해관계가 얽힌 경우는 문제해결을 위해 먼저 인제군과 긴밀한 대화와 의견교환이 우선순위였을 것인데 그러한 부분이 없었다는 것은 유감이다. 지명에 대한 문화적 긍지는 양양군민들만의 몫은 아닐 것인데, 인접한 이웃에 대한 배려심이 많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아쉬운 부분이다.
설악산이라는 천혜의 아름다운 자연의 보물을 가지고 있는 양양군과 인제군은 축복받은 땅이다. 이 좋은 자원을 활용하여 지역경제를 더욱더 활성화시키려 한다면 이웃 군과 전력으로 협심하여 지역에 대한 규제완화라든가 두 지역 간에 연계를 강화하는 등의 서로 간에 상생(win-win)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고 바람직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아이에게 떡 한 조각 주기위해 다른 아이의 손을 벌리게 하는 건 좀 모양새가 이상하지 않을까?
이러한 문제가 지속되어 서로 간에 반목이 깊어진다면 양쪽 다 얻는 것(得) 보다 잃는 것(失)이 많을 것이다.
나의 좁은 소견으로 공식명칭은 한계령, 속칭은 오색령이 어떠할지….
아무튼 조속히 문제를 해결해서 상호 신뢰를 회복하는 길만이 서로가 이기는 길이다.
한계령의 명칭이 어떠한들 바뀌지 않는 것은 사람들의 기억이고 역사성이며 아름다운 자연환경이다.
오랜만에 가수 양희은의 '한계령'이나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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