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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옥의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일본말 찌꺼기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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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정상>에 밀린 토박이 말 ‘산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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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7월 06일(화) 11:54 [인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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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윤옥 칼럼위원(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 소장) | ⓒ 인제신문 | |
천축산 산마루
-고야 -
천축산 산마루에 보름달 뜨면 /신라천년 보살들 /이무기 놀던 못가에 나와 /선묘 불러 놀며 갈제 / 의상대사 끝내 보지 못했네 / 산마루 해지고 /달도 진 밤 /의상 홀로 바위에 앉아/ 불영 못에 비친 /선묘 그리네.
산마루, 산꼭대기라는 우리말이 있다. 651년 신라 진덕여왕 때 의상이 세웠다고 하는 경북 울진의 불영사(佛影寺) 산마루에 보름달이 훤히 떠있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만일 이때 ‘천축산 산 정상에 보름달 뜨면’이라고 시인이 노래했다면 얼마나 멋이 없었을까? 산마루에서 산(山)이란 한자말이지만 ‘마루’나 ‘꼭대기’는 정겨운 우리말이다. 그러나 시에서만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듯 하여 안타깝다. 대관절 언제부터 쵸-조- 라고 소리나는 ‘정상(頂上)이란 일본말이 들어와 ‘산마루’를 밀어 낸 것일까? <표준국어대사전>에 보면, ‘정상(頂上) :「1」산 따위의 맨 꼭대기.「2」그 이상 더없는 최고의 상태.「3」한 나라의 최고 수뇌.’라고 풀이하고 있으나 일본말이라는 것은 밝히고 있지 않다. 같은 사전에 다음과 같은 일본말을 ‘순화’하라고 밝히고 있는 것과 대조적인 자세다. 추월/대절/고참/차출/식상/시말서...같은 일본말은 각각 앞지르기/전세/선임자/뽑아냄/싫증남/경위서...로 순화하라고 써 놓고 있다. 그러나 ‘정상’에 대해서는 아무 표시가 없다. 무슨 기준으로 순화하랬다 말았다 하는지 모르겠다.
‘남북 정상 회담’이라든지, ‘백두산 정상에서 바라다 본 천지’같은 말속에 있는 ‘정상’이란 말은 이제 흔해빠진 말이지만 이 말은 일본말 쵸-조-(정상, 頂上)에서 들어 온 말이다.
일본국어대사전<大辞泉>에 보면, ‘ちょう‐じょう【頂上】1 山などのいちばん高いところ。いただき。2 最高の状態に達していること。最高の地位、また、その人。구태여 우리말로 번역할 필요는 없다. 국어사전에서 착실히 베꼈으니까 그걸 보면 된다. 여기서 우리 토박이말 ‘마루’를 연구한 일본 산악인을 소개한다. 산사나이 다니유우지(谷有二)씨는 스스로 ‘언어학자도 아니고 지명학자도 아니다’라는 전제를 달면서 숱하게 자신이 오르내리던 일본 산 이름에 ‘마루’가 붙어 있는 것을 수상하게 여기던 참에 NHK의 한글강좌를 통해 한국어 공부를 하면서 ‘마루’라는 말이 ‘높은 산꼭대기’를 가리키는 것에 주목한다. 그리고는 직접 한국산을 올라보기 위해 한국으로 건너와 크고 작은 산에 오르면서 일본산 이름에서 품었던 의심을 <조선어로 풀어보는 일본 산 이름 수수께끼>로 정리하여 일본산악잡지 ‘산과계곡,山と溪谷’ 연재하기 시작한다. 이어서 1983년에는 『일본산악전승의 수수께끼』라는 한권의 책을 낸다. 유우지씨는 여기서 고백한다. 한국에서 집을 지을 때 지붕 꼭대기를 가르키는 ‘용마루’를 들어 ‘마루’는 높은 곳을 가리키는 한국 토박이말임을 깨달았다고 말이다.
지금 한국 사람들은 산‘마루’라는 토박이말을 버리고 ‘산정상’이란 말을 쓰지만 유우지씨는 거꾸로 일본 산 이름에 붙어있는 ‘마루’를 연구하고 있다. 우리 토박이말 마루는 일본말에서도 ‘마루, maru’라고 발음하며 한자로는 ‘丸’을 쓴다. 유우지씨는 ‘丸’은 원래 둥근 모양을 나타내는 것으로 ‘산정상’을 뜻하는 ‘산마루’도 평지에서 보면 둥글게 솟은 형태라 한자로 ‘丸’이라고 표기 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단자와산(丹沢山)은 도쿄에서 특급 오다큐선을 타고 1시간 정도 달리면 만나는 산으로 ‘일본 100 명산’에 꼽히는 크고 작은 봉우리로 이뤄진 산이다. 유우지씨는 단자와산에 있는 해발 1601미터의 히노키보라마루(檜洞丸) 말고도 오오스기마루(大杉丸)를 포함아여 20여 곳의 산봉우리에 한국말 ‘마루(丸)’ 가 붙어있다고 했다. 또한 일본 전국에 1000미터 급 이상은 거의 한국토박이말 ‘마루(丸)’가 붙어있다고 봐도 좋다고 단언한다. 일본어로 쓴 유우지씨의 『일본산악전승의 수수께끼,1983, 미래사』8쪽에는 일본산 전역에서 발견되는 ‘마루(丸)’에 대한 이야기로 흥미진진하다.
일본은 우리 겨레가 만든 말 ‘마루’를 들여다가 자기네 산이름에 턱허니 붙여쓰고 있다. 그리고 근세에는 쵸-조-‘정상(頂上)’란 한자말을 또 만들어 ‘히말라야 정상’이라든가 ‘정상회담’ ‘경기가 정상을 회복하다’ 같은 표현을 할 때 쓰고 있다. 욕심쟁이다.
반면 한국은 국어사전에서조차 일본말 ‘정상’ 풀이에 ‘산꼭대기'라고만 풀이한 채 ‘산마루’란 소중한 말을 적고 있지 않다. 오래된 겨레의 말을 어느 순간부터 버리고 남이 만든 말로 채워가는 우리들의 모습은 국치 10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더욱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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