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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봉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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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천황의 탄생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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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5월 25일(수) 23:59 [인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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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박송남 논설위원 | ⓒ 인제신문 | |
신발이 큰 것이 아니라 내 발이 작다는 것을 아는 사람. 그것이 바로 깨달음이다. 꽃으로 아름다웠던 잔인한 4월은가고, 꽃이진 그 자리엔 싱그러운 잎들이 무성하다.
짙게 푸른 잎들은 새로운 탄생을 기다리고 있다. 태어나는 아기 열매는 엄마를 닮아 푸르게 동색으로 태어난다.
세월이 지나면서 열매는 누렇게 익어가고 엄마의 푸른 잎도 아기의 뒤를 쫓아 누렇게 변해간다. 창조주의 섭리로 보기 보다는 환경에 적응하며 아기자기, 오순도순, 서로 믿고 사랑하며 상호 조화를 이루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모습이다.
우리가 진정 바라고 원하는 모습이다. 그런 세상 만들겠다며 오늘도 단상에 올라서서 목 터지게 소통과 화합을 외치는 정치인과 한가락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기만 하고 말은 귀담아 듣지는 않는다.
되지도 않는 말, 듣기 보다는 참담한 세상을 돌아보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 같다.
반값등록금에 목을 매고, 시급 몇 천원에 날밤을 새우고 구내식당에서 밥한 그릇 챙겨먹고 학교동아리방에서 담요 한 장 뒤집어쓰고 잠드는 청춘이 안타깝게 보인다.
살 처분 될 구덩이 앞에서도 새끼에게 젖을 물리는 어미 돼지를 바라보는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아 외면을 해 버린다. 말 못하는 그들은 "이성을 잃어버렸구먼." 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들은 밥 먹는 입은 있지만, 말할 수 있는 입은 없다.
부산저축은행 사건을 보면 럭비공이 되어버려 어디로 튈지 예측할 수가 없다.
평생을 뼈 빠지게 모은 돈 후순위가 뭔지도 모르고 맡겼다가 사슬로 굳게 잠긴 현관 출입문을 흔들며 울부짖는 노부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올 뿐이다.
누가 그랬는가. 따져보기가 겁난다. 지체 높고 가진 자들이 그랬다니, 참불가언(慘不可言)이다. 산 짐승을 구덩이에 쏟아 붓는 것 보다 더 잔인하다. 오죽했으면 대통령마저도 분노를 느낀다고 격한 표현을 했겠는가. 심한 정도를 나열하기에 지면이 좁다.
그것만도 아니다. 일본 원전사고로 소금이 동나버렸다. 그것도 김장철이 아닌 초봄에 그랬다. 소금으로 밥 지어 먹을 것도 아닌데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간 저려야할 소금이 없으니 배추는 아직도 시들시들 살아있다.
모두가 이기적이고 제멋대로다. 제동장치는 이미 고장나버렸다. 백주대로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끼어들 엄두도 못 낸다. 다칠 가봐 겁나서 그러는 거겠지.
제멋대로 난장판 만드는 그들이 싫었던지 법륜스님이 "사람이 하고 싶은 것 다하고 멋대로 행동하면 세상이 어떻게 되겠느냐? 어떤 사람이, 지나가는 예쁜 여자가 좋아서 달려가 뽀뽀를 해버린다면 되겠는가? 그것은 추행이고 뺨 맞을 짓이다"라고 했다.
더 나아가면 추락이다.
이쯤 되었을 때 정지 시켜야 한다. 앞은 낭떠러지밖에 남아 있는 게 없다. 늦었지만 한 번만 더 생각해 보자. 신발이 내 발에 맞지 않는다고 화내며 던져버리지 말자. 커서 못 신는 신발은 없다. 커서 못 신으면 구멍 난 양말이라도 두세 켤레 껴 신으면 된다. 우리 어렸을 적에는 그렇게 신고 자랐다. 궁색한 지혜이긴 하지만 구시대적 가난한 사람들의 말로는 임시변통이다. 지금은 내 발이 작지만 조금씩 자라면 언젠가는 커서 못 신었던 신발이 내발에 꼭 맞는 신발이 된다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신발 탓은 이제 그만 하자.
지금까지는 모든 것을 단편 일률적으로만 생각해 왔다. 몇 포대씩 소금을 사가는 사람에게 불신의 눈으로 파렴치한으로만 봤다. 썩어가는 생선 때문이었다.
그런데 친구가 내게 다가와서 넌지시 귀띔해 준다. "너무 걱정 말게 냉동 창고가 있지 않은가." 거기까지 미치지 못한 생각에 조금은 무색해 진다.
모두가 남의 탓이고 내 탓은 하나도 없다.
정치판을 봐라, 남의 탓이 올 백이다. 성적으로 치자면 전교 수석 감이다.
4.27 보궐 선거 때 보니까 전부가 상대의 탓이었다. 듣자하니 자신은 도덕군자이고 상대는 모리배 같아 보이더라.
그러니 후유증으로 큰 동네, 작은 동네 할 것 없이 몸살을 앓는다. 그 흙탕물이 큰 동네는 바다로 흘러 들어가니 쉽게 희석이 되는 것 같고 작은 동네는 웅덩이에 모이니 냄새가 피부에 와 닿는다.
한마디 하고 싶다. 그래서 얻는 것이 무엇인가!
집도 없고 울타리도 없는 곳은 동네가 아니고 벌판인 것이다. 벌판에 사는 인디언도 비가 림 할 움막은 가지고 있다.
순망치한(脣亡齒寒)이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 법이다.'
내년에는 파천황(破天荒)이 탄생할 것인가.
옛 당(唐)나라 때 형주(荊州)에서는 매년 관리등용시험에 응시자는 있었으나 합격자가 없어 사람들은 형주를 '천황'의 땅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유세가 처음으로 합격하자, 사람들은 천황을 깬 자가 나왔다며 유세를 가리켜 '파천황'이라고 일컬었다
천황(天荒)이란 천지가 아직 열리지 않은 때의 혼돈한 상태인 것을 말하며,
파천황(破天荒)은 이것을 깨뜨려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는 말이며 지금까지 아무도 하지 못했던 일을 이루어 낸다는 뜻으로 이 말을 쓴다.
'파천황' 다시 한 번 새겨볼 글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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