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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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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잊지 말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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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6월 22일(수) 14:07 [인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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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김종근 6.25참전유공자회 회장 | ⓒ 인제신문 | |
이번호부터 6.25참전유공자회 김종근 회장의 특별기고를 연재합니다. 올해 89세인 김 회장은 이번 연재를 통해 일제강점기부터 6.25전쟁때까지 본인의 경험당을 생생하게 들려줄 계획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부탁드립니다. -편집자주
일제강점기에 출생하여 일본교육을 받으며 성장하던 1905년 우리나라가 국력이 없고 나라를 잘못 다스려서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제로 침략하여 식민지로 만들고 일제의 총칼과 일제 앞잡이 노릇을 하는 조정대신들의 강요에 의하여 1910년 8월29일 한일합병 조약을 강제로 체결하고 우리나라에 조선총독부를 설치했다.
정치와 경제권을 뺏고 민족말살을 위해 조상들의 성과 이름까지 일본말로 바꾸게 하고, 삭발령을 내려 남녀 모두가 머리를 삭발하도록 했다. 20대 청년들은 강제지원병으로 30대는 징용 40대는 보국대로 데려가고 미혼녀 17~18세는 일본군인 위안부로 대려갔다.
소와 말도 공출을 당하고 돼지와 개, 토끼는 잡아서 가죽을 공출했다. 곡식은 오곡간의 전부 할당하면 이유를 막론하고 공출해야 하고, 곡식이 잘되는 밭에는 아편과 대마초, 목화를 심어서 공출을 하고 산에 있는 초목까지도 수난을 겪어야 했다.
신당나무 잎, 칡잎, 머루나무 잎, 참싸리나무, 피나무껍질도 공출을 하고 소나무에서는 송진을 내서 바치고 소나무뿌리 관솔을 파다가 공출을 하는 젊은 사람은 다 붙잡아가고, 노약자들이 농사일을 제대로 못하다보니 식량부족으로 초근목피로 생명을 이어갔다.
칡뿌리,물고기, 둥글레를 캐다 울겨먹고 소나무, 잣나무 껍질을 삶아 먹고 춘궁기에는 보리가 채 익기도전에 먼저 익은 보리이삭을 골라 가위로 잘라 가마솥에다 볶아서 맷돌에다 갈아서 나물을 넣고 죽을 만들어서 먹었다.
밤에는 돈이 없어서 석유를 못사서 소나무뿌리(관솔)를 파다가 잘게 도끼로 쪼개서 말린 것을 방에다 코쿨을 만들어 놓고 관솔불을 피우고 그 불빛 앞에 앉아서 바느질도 하고 짚신도 삶고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고생을 했다.
천우신조로 유엔군과 광복군 애국지사님들의 피나는 노력 끝에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되었으나, 기쁨도 잠시뿐이었다. 환호성이 그치기도 전에 북에는 소련군 남에는 미군이 주둔하면서 국토는 동강이 나고, 민족은 분열되어 남에는 민주진영이 북에는 공산진영이 38선을 사이에 두고 대치했다.
남북이 각각 단독 정부를 수립하고 북한에서는 38보안대가 38선을 지키고 남한에서는 경찰이 38선을 담당하면서 경찰병력이 부족하여 대한청년들과 같이 경계근무를 하는데, 비가 오던지 눈이 오던지 밤에는 틀림없이 불법기습을 하여 경찰과 청년단원을 납치 살해하고 일주일이면 2~3회 정도 기습을 하여왔다. 그래서 국군이 38선을 담당하고 경찰은 후방철도 경찰로 이동하였다.
나도 38선에서 근무하다가 충남 대전철도경찰 본대 발령을 받고 근무를 하다가 휴가를 얻어 집에 와서 보니 내가 근무할 때보다 자주 불법기습을 한다고 하는데, 38선 인근에 부모님을 두고 갈 수가 없어서 경찰관직을 사표하고 경찰정복과 신분증을 충남 대전철도경찰본부로 우송하고 집에 있었다.
기린면 청년단장의 권유로 충남 청년방위사관학교에 입교하여 1개월간 군사교육을 받고 방위군 소위로 임관하여 고향에 와서 방위군을 모집하여 군사교육을 하던 중,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를 기해 북한 김일성이 남한을 적화통일할 목적으로 불법기습으로 민족의 비극인 동족상잔이 발발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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