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특별기고
|
|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잊지 말자 <2>
|
|
2011년 06월 29일(수) 01:12 [인제신문] 
|
|
|
| 
| | ↑↑ 김종근 기린면 6.25 청년결사대 회장 | ⓒ 인제신문 | |
소련제 전차와 탱크 야포 등으로 중무장한 적군은 파죽지세로 밀려오는데 아군은 무기라는 것이 M1 소총에다 기관총과 박격포가 전부였으니, 결사적으로 항전하였으나 전군의 공격을 막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무기와 병력의 열세로 개전 3일만에 수도 서울을 포기하고, 적의 진로를 차단하기 위하여 눈물을 머금고 한강대료를 폭파하고 헤아릴 수 없는 악전고투를 거듭하면서 대구를 지나 낙동강까지 후퇴했다.
여기에서 더 내려가면 조국의 운명은 돌이킬 수 없게 되므로 아군은 낙동강 일대에 방위선을 구축하고 학도병을 모집해 필사항전으로 방어하고 있었다. 이 때 천우신조로 유엔군이 참전하여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해 9월1일 인천에 상륙하니 전세가 역전되어 9월28일 수도 서울을 탈환했다.
한국군은 중동부전선 북진을 하고 유엔군은 서부전선으로 북진할 때 기린면 지역에서는 6.25때 피난을 가지 못한 대한청년단들이 반공청년결사대를 조직했다. 반공청년결사대는 36년 동안 일본에게 나라를 뺏기고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고생을 하였는데, 북한 공산당에게 나라를 뺏기면 조국의 운명은 돌이킬 수 없게 되므로 백척간두 위기에 처한 조국을 위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이 지역을 점령했다.
온갖 만행을 하는 노동당 놈들과 분주소놈들이 강제로 인부를 동원해 기린면 창고에 있는 비축미를 인민군의 군량미로 하기 위하여 홍천방면으로 운반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우리 결사대원은 상남리 오매자고개에 잠복하고 있다가 양곡운반조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인솔자 분주소원놈과 노동당놈을 붙잡아 서산으로 끌고가서 소나무에 결박했다. 인부들이 지고온 쌀은 인부들 각자 자기의 집으로 가져가도록 하고, 8월 중순경 하남리에서 필자와 홍준표, 박갑천 등 8명은 상남리 인민위원장 한명대씨를 설득시키고 심원섭 방위 소위, 양일용, 박석철, 연변기 등 7명이 상남리 산림보호구 사무실에서 기린면 분주소하고 노동당을 쳐부수기로 회의를 한 바 만장일치로 합의했다.
무기는 필자가 책임지기로 했다. 그날 필자는 홍천군 서석면에 사는 친척 조카되는 김종걸을 설득시켜 기린면 분주소원으로 투입시키고, 김종걸이 분주소에서 숙직하는 날 밤에 무기고에서 무기를 꺼내서 우리 결사대원에게 주기로 약속하고 상남, 하남리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김종걸이 오늘밤 11시 정각까지 오라는 연락이 와서 상남리에서 10명, 하남리에서 10명이 약속시간에 덕다리에 도착하는데, 분주소에서 우리가 가고 있는 방향으로 무차별 집중사격을 했다.
낙심천만 우리는 덕다리 공동묘지 방면으로 피신하고 있다가 인민군과 싸울작정을 하고 있는데 연락이 왔다. 우리 집에 인민군 두명이 와서 밥을 해달라고 해서 밥을 하고 있으니 빨리 와서 잡으라고 한다.
연락을 받고 즉시 필자와 홍준표, 박갑천 3명이 가서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인민군 동무 수고하십니다"하고 필자는 인민위원장이라 하고 박갑천은 민청위원장이라 하면서 말을 하다가 "저기 있는 총이 따발총이요?"하고 물으니 "아닙니다"라고 했다. 일본놈들이 쓰던 38식 장총은 홍준표에게 주고 필자는 아식장 총을 받아들고 "꼼짝마라 우리는 국방군이다. 손들어"라고 결박을 하니 "우리는 강제의용군으로 붙잡혀 끌려가다가 고향으로 가기 위해 외딴집을 찾았습니다.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라고 애원을 했다.
<계속>
|
|
|
|
인제신문 기자 injenews@hanmail.net “새감각 바른언론” - Copyrights ⓒ인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
|
|
인제신문
기사목록 | 기사제공 : 인제신문
|
|
|
|
|
|

|
|
|
|
실시간
많이본
뉴스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