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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봉 칼럼 / 영원한 것은 만고천추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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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1월 03일(월) 09:22 [인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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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박송남 논설위원 | ⓒ 인제신문 | |
시작과 끝이 없는 영원한 세월을 만고천추(萬古千秋) 라고 한다.
천사만려 해봐도 만고불멸(萬古不滅)도 없고 만고청상(萬古靑常)도 없다. 그러니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은 모두가 유한(有限)한 것뿐이라는 것이고, 전광석화에도 비유할 수 없을 만큼 짧은 것이 인생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본시 사람이란 게 그런가 보다. 댓돌 밑에 서 있을 때는 권불십년이요, 화무십일홍이요, 위를 올려다보면서 입만 열면 읊어대더니만 대청마루에 올라서기만 하면 건망증에 걸린 듯 엉뚱한 궤변만 늘어놓는다. 그리고 하는 말이 초심을 잃지 않겠습니다.라고 정중히 허리 굽혀 절한다. 이것이 속세의 현주소라 하겠다.
소한추위를 체험으로 함께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것이 그렇다. "너는 아침부터 무엇을 그리 허둥대느냐?" 부차가 묻자, 우가 이렇게 대답했다. "아침에 정원에 갔더니 높은 나뭇가지에 매미가 앉아서 울고 있었습니다. 그 뒤를 보니 사마귀 한 마리가 매미를 잡아먹으려고 노리고 있었습니다. 그 때 홀연히 참새 한 마리가 날아와서 사마귀를 잡아먹으려고 노리는데, 사마귀는 통 기미를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참새를 향해 활시위를 당겼습니다. 그런데 그만 활 쏘는 데 정신이 팔려 웅덩이 속으로 빠져버렸습니다. 그래서 옷을 이렇게 적신 것입니다."새겨봄직한 말이다.
세상은 잡아먹고, 잡혀 먹히고, 먹이사슬로 이어가는 것이다. 장자는 이 일화를 "모든 사물은 본래 서로 해를 끼치는 것이며, 이(利)와 해(害)는 서로가 서로를 불러들이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어찌 보면 세월이 흐른 만큼 많은 변화가 있을 법도 한데 금고일반인 것을 보면 인간은 관행이라는 떼 묻은 동아줄에 묶여 사는 모양새다.
인간사 이(利복)와 해(害잡)가 서로가 서로를 불러드리니 고장 난 신호등 밑에서 찌그러진 차 앞에 세워두고 삿대질해가며 싸우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하나 같이 싸우는 데만 정신이 팔려있다. 뒤에서 참새가 노려보고 있다는 사실은 염두에도 없고 눈앞에 매미만 보고 있다. 현자가 이 광경을 보면 얼마나 어리석다 할 것인가.
경공은 따뜻한 방 안에서 여우 털로 만든 옷을 입고, 사흘 동안이나 눈이 내려 땅을 뒤덮은 설경을 바라보며 마치 봄 날씨처럼 따뜻한 게 조금도 춥지 않다. 라고 말 했다. 그때 재상인 안자가 경공의 곁으로 다가와 여우 털옷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정말로 날씨가 춥지 않으십니까?"하고 물었다. 뒤늦게 깨달은 경공을 부끄럽게 한 것이다.
옛날의 현명한 군주들은 자기가 배불리 먹으면 누군가가 굶주리지 않을까를 생각하고, 자기가 따뜻한 옷을 입으면 누군가가 얼어 죽지 않을까를 걱정했으며, 자기의 몸이 편안하면 또 누군가가 힘들어하지 않을까를 염려했다고 한다.
오늘날 이 말은 "내 배 부르면 종의 배고픔을 모른다. 나귀등에 탄 사람은 몰이꾼의 고통을 모른다."는 속담과 상통하는 말이다. 남의 어려움이나 불행도 자기중심적으로 소홀히 여기지 말라는 자기중심적인 추기급인(推己及人)의 마음자세를 버려야 한다고 충고하고 있다.
길가의 오얏은 쓰다
1월은 연중 가장 추운절기다. 연탄불에 몸과 마음을 녹이는 소외계층과 가난한 이웃을 위해서라면 말보다는 실천이 중요하다.
나귀등에서 내려 털 구두도, 양말도, 목에 두른 목도리도 벗고 눈 위를 걸어보기 바란다. 체험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최고의 스승이며 교훈이 된다. 생니를 앓아본 사람은 생니 앓는 것이 가장 큰 고통이라 말하고 산모는 해산의 고통이 가장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라 말한다. 이는 체험에서 나온 말이다. 추위를 체험해 보지 않고, 배고픔의 설음을 체험해 보지 못하고는 나눔과 봉사의 참의미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눈높이가 같을 때만이 상대를 바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마상에서 천하를 호령할 수는 있지만 민심을 얻지 못한다. 지체의 고하를 막론하고 땅을 밟고 서서 손을 맞잡아야 한다. 그러므로 옆 사람을 볼 수 있게 되고 그것이 위민천하의 바람직한 모습이다.
저쪽 길가에 오얏나무 한그루가 가지가 휘어질 만큼 많은 열매를 매어단 채 서 있다. 그것을 본 아이들은 그 열매를 따려고 앞을 다투어 달려갔다. 그런데 왕융 혼자만은 움직이려 들지 않았다. 그래서 지나가던 사람이 물었다. "너는 왜 열매를 따러 달려가지 않느냐" 그러자 왕융은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길가에 있는데, 아직도 저렇게 열매가 많이 매달려 있는 것은 틀림없이 써서 먹지 못할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도방고리(道傍苦李)라는 고사성어에 나오는 말이다. 길가에 있는 오얏은 쓰다는 의미로써, 많은 사람이 손가락질 하고 무시하는 것은 반드시 그 이유가 있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지금까지 위에 언급한 말들은 반목과 갈등이 팽배해 있는 사회, 불통으로 꽉막혀버린 인간사회, 위정자들의 과도한 욕망과 출세위주의 경쟁사회가 빚어낸 참극. 총체적인 난맥상. 이런 것들을 풀어가는 길을 가르쳐주는 말이다. 요약해 보면 세상엔 영원한 강자도, 패자도 없다는 것이며, 자신에게로 향한 손가락질도 원인의 대부분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깨달아라, 가장 중요한 것은 지도자의 자세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므로 통치와 인화의 덕목으로 삼아달라는 것이다. 끝맺음말로는 아무쪼록 신묘년 새해는 소통과 화합으로 미래가치 창조의 원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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