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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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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잊지 말자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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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7월 20일(수) 00:09 [인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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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김종근 기린면 6.25청년결사대 회장 | ⓒ 인제신문 | |
그 집 주인이 마을에 갔다오다가 인민군을 만나 비가와서 행군을 못하니 우리가 잘 집을 안내하라고 하여 우리 대원들이 자기네 집에 왔있는줄 모르고 인민군을 데리고 집으로 왔다.
결사대원들이 방안에 가득하니 방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있는데 뒤따라온 인민군놈들이 무어냐 하면서 방문을 열었다. 불침번 근무자가 우리는 국방군이다 무어하냐니 라고 소리치자 인민군들은 도망치고, 우리 대원들도 인민군이라는 소리에 놀라 방뒷문을 열고 뒷산으로 도망을 쳤다. 인민군놈들도 놀라서 집에 들어오지 못하고 서울로 도망가서보니 박상선 대원이 붙잡혀 가다가 구사실생으로 탈출하여 4시간만에 부대로 돌아왔다.
방태산 노루마당 전투= 현리에 인민군놈들이 와서 행패를 부리고 식량을 약탈하고 있으니 빨리와서 도와달라고 연락이 와서 즉시 2~3중대가 뒷산으로 해서 현리 앞산에 도착해 대기하고 있었다.
12시 정각에 신호총소리와 동시 포위작전으로 현리를 공격하기로 하였는데, 13시가 지나도록 신호총소리가 없으니 2~3중대에서 사고가 난줄 알고 오던 길로 귀대하는 도중 대원들이 배가 고프니 밥을 먹자고 하여 경계병을 좌우로 2명 배치하고 옆에 있는 말등바위를 의지하고 식사를 했다. 그때 경비병이 달려오면서 인민군이 10미터 앞에서 달려온다고 전했다.
장소가 불리한 곳이다. 우리가 도망칠 수도 없는 곳이었다. 그동안 적군이 말등바위를 사이에 두고 총사격도 못하고 수류탄을 우리에게 던진다. 우리는 적군이 던진 수류탄을 재빨리 집어서 적군에게 던지니 자기가 던진 수류탄에 맞아 죽기도 했다.
우리 중대가 적군과 싸운 걸 알고 대대본부에서 지원공격으로 적군은 전멸하고 아군 피해는 전사 1명이 었다. 전과는 소총 30정, 실탄 400발 등 노획하고 대전과를 올렸다.
그 다음부터는 덕고개에 잠복대기하고 있다가 들어오는 패잔병들과 전투가 계속되었다. 하루 2~3번은 보통 싸워야 하고 밥을 먹다가도 적군이 온다고 연락이오면 밥을 못먹고 출동해야 했다.
9월 20일경= 적군이 상남지서와 심원섭 중대를 기습하고 하남리 우리 1중대를 기습하려고 하였으나, 우리 중대원이 순찰 근무하다 적군을 발견하고 갈미봉으로 피하면서 현리 대대본부에 연락했다.
적군은 우리 중대본부에 들어가다가 아무도 없으니 근길 신작로가로, 우리 중대는 마을로 나갔다. 적군이 용포강에서 자동차를 건내는 큰배를 타고 강물 복판에 들어가자 총공격으로 수중작전에 대전과를 올리고 상남지서에서 가지고 온 전화기와 서류 등은 상남지서로 보내줬다.
하남리 덕고개= 덕고개가 아군이 작전을 하는데는 제일 유리한 장소다. 덕고개에서 상남리 오미자고개가 약 6km 거리인데, 적군이 걸오오는 것을 완전히 볼 수 있다.
1개 소대 정도는 덕고개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해치우고 대부대는 우리 대원 1명을 인민군이 오는 도로가에서 일을 하고 있으면, 인민군들이 틀림없이 길안내를 하라고 한다.
이 길로 가면 국방군과 경찰이 있으니 배를 타고 강을 건너서 방태산 절골로 가게되면 안심하고 살 수 있다고 유인했다. 강을 건널 동안 우리 대원들은 먼저 가서 잠복대기하고 있다가 강물을 사이에 두고 집중사격을 하면 독안에 든 쥐가 되어 살아가는 놈 한놈도 없게 된다. 앞에는 강물이 있고 뒤에는 병풍석 암벽이 있으니 꼼짝도 못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장소다.
운이덕 전투= 10월 초순경 주민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부락에 패전병 약 40명이 와 주민을 못살게 굴며 식량을 닥치는대로 약탈해가고 하니 빨리와서 도와달라고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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