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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봉 칼럼/ 빨래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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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에 잠긴 보름달과 같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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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7월 20일(수) 00:14 [인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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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박송남 논설위원 | ⓒ 인제신문 | |
'빨래터'하면, 옛날 아낙네들이 개울가에 모여앉아 빨래하는 전통적인 모습이 떠오르고, 다른 하나는 박수근 화백의 빨래터 그림이 생각난다. 본시 그림에는 문외한이라 딱히 할 말은 없지만 37cm×72cm 크기의 그림경매가가 무려 45억이라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오래전, 전기도 없고 수도, 세탁기도 없던 농경사회 시절 우리네 삶의 풍경이 한 장의 그림 안에 고스란히 함축되어 있고, 지금은 그리움 가득한 향수가 깃들어 있어 값어치가 높은 게 아닌가 생각해 본다. 하지만 그림 이야기를 하자는 건 아니고 옷에 배어 있는 찌든 떼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다.
할 얘기도 많던 빨래터
요즈음 같은 장마철이면 빨래 감이 두서너 배 늘어난다. 처마 밑에서 말려도 잘 마르지 않고 그냥 입자니 눅눅해서 한번 젖은 옷은 빨 수밖에 없다. 그러니 빨래터는 반짝 햇볕에 동네아낙네들이 모여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빨래터는 그간 밀린 빨래 못지않게 할 얘기도 많고 궁금했던 것도 많고 흉도 많으니 이곳은 자연히 정보가 만발하고 그것들이 가공되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더러는 삭이고 담아두었던 한을 방망이로 두들겨 풀기도 하는 곳이다. 냇가에 자리 잡은 빨래터는 정자에서 멀지않게 내려다보이는 곳이니 그곳에서 시간 보내는 동네 어른들은 누구네 며느리가 부지런하고 착한지도 안다.
착한 며느리든 아니든,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옷은 자주 갈아입으라고 선심을 쓰는 것이다. 갈아입은 지 얼마 안 된다고 떼쓰는 아들놈과 지아비의 옷을 기어이 벗겨 갈아입히는 것이다. 속사정을 모르는 남정네들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고마우면서도 고맙지 않게 억지로 떠밀려 하면서도 어떻게든 안 해보려고 요리조리 핑계를 댄다.
어릴 적, 양은대야에 양잿물 두어 덩어리 넣고 푹푹 삶은 빨래 감을 들고 빨래터로 가는 어머니를 따라 갔다가 방망이에 화풀이하는 모습을 본적이 있다. 넓적돌 위에 올려놓고 치대고 방망이질 하면서 어깨가 아픈 듯 팔을 한 바퀴 휘두르고는 치대고 방망이질 하고 또 한다. "이 웬수 같은 놈의 자식" 거무죽죽한 찌든 떼가, 달아빠지도록 문질러도 빠지지 않자 급기야 화살이 자식에게로 돌아간다. "제발 말 좀 들어먹어라" 옷 갈아입기 싫어하는 자식에게 하는 말이다. 찌든 옷 빨래하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그때 알게 되었다. 진작 알아챘더라면 어머니를 생각해서라도 추운 날 목욕은 자주 못해도 옷이라도 제때 갈아입을 걸 싶다.
하여튼 빨래터에 나가보면 청절지사(淸節之士)로 이름난 백이숙제가 입던 옷이라 해도 떼 없는 빨래 감은 없다. 허니 떼를 흠이라 할 수는 없지만 사람이건 빨래 감이건 가급적이면 냄새나고 추하지는 말아야할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예나 지금이나 개울물은 맑지만 옛날 사람들은 땀을 씻어내고 지금 사람들은 세상 먼지를 씻어내니 물이 다른 건지, 세상이 다른 건지 혼란스럽다.
사람은 근본이 착해야 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빨래터에서 나온 떼 구정물이 미나리꽝으로 흘러들어 거기서 정화되어 논으로 들어가 농사를 짓고 우리가 그 양식을 먹으니 양잿물은 미나리가 먹고 우리는 공해 없는 쌀밥을 먹었다. 흰옷을 즐겨 입고 착하게 산 우리에게 하늘도 양잿물을 먹일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지금, 공석이 된 사회단체장 자리를 놓고 빨래터같이 사람들이 모이고, 이렇군. 저렇군. 말들이 오가는 곳이 있다. 그곳이 어딘가! 그곳은 입던 헌옷 벗어던지고 비단옷으로 갈아입고 얼굴 내세우는 자리가 아니다. 비록 헌 옷이라도 기워 입고 빨아 입어 정갈한 차림으로 서야 할 곳이다. 그곳은 자신의 찌든 옷을 빠는 곳이 아니라 정신적인 빈곤으로 삶에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삶의 갈증을 풀어주어야 할 곳이다.
그곳이 문화원이라면, 문화는 삶의 전체이고 전체의 삶 중에 의식과 정신문화가 주축이 되는 곳이다. 따라서 의식이라는 것은 음식과 같은 것이어서 양식이 없으면 우리의 정신은 굶주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큰 강을 건너야 한다면 문화는 다리가 되어주는 것이다. 이렇듯 문화는 단순히 먹고 마시고 즐기는 영역을 벗어나 사람의 새로운 가치를 일구어 내게 하는 것이다.
문화원은 정치판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곳에 앉을 사람은 문덕(文德)으로 언행에 있어 본이 되어야하고 학문을 통하여 사람들의 인지(人智)가 깨어 밝게 해야 하는 것이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의식을 바꾸어 삶의 질을 높이고 행복하도록 이끌어 줄 막중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그 곳이 어딘가! 그곳은 우리의 생각과 삶을 변화시킬 문화원장이라는 자리다.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하나 달랑 들고 너도나도 끼어드는 정치판으로 생각해서는 안 되는 자리다. 바라 건데 그 자리 앉을 사람은 바람 없는 날 호수에 잠긴 보름달과 같은 사람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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