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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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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잊지 말자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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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7월 27일(수) 11:48 [인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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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김종근 기린면 6.25청년결사대 회장 | ⓒ 인제신문 | |
연락 즉시 작전회의를 하여 2중대는 A고지를, 3중대는 B고지로 해서 윤이덕 부락 뒷산에서 만나 12시 정각에 신호총과 동시에 총공역을 하면 1중대는 전면공격하기로 작전했다.
1중대는 부락입구에서 잠복대기하고 신호총소리만 기다리고 있는데, 약속시간이 지나도록 총소리가 않나니 도중에서 잘못된 줄 알고 일단 왔으니 1중대 단독으로 공격을 하여 적군을 다 사살했다.
윤이덕 산에서 만세를 부르고 하산길에서 보니 2중대가 담당했던 고지에 적군인지 아군인지 알 수 없는 약 2개 중대 정도의 군인이 보였다. 우리가 "2중대요?" 하고 소리를 치니, 옳소 하고 대답을 하여 내가 태극기를 흔드니 놈들은 백색기를 흔들기에 쌍안경을 통해보니 적군이었다.
우리가 2~3발 사격을 하니 놈들은 우리에게 총공격을 하여 우리는 후퇴해 현리 대대본부에 와보니 대대본부도 행방불명이고 현리 주민들까지도 피신을 하고 없었다.
사람을 보아야 물어볼텐데 사람이 없기에 큰일이다 하고 하마루길에 이르자 지서주임 김군선과 대대장 홍인철, 작전을 담당한 윤병선 등이 우리가 포위에 쌓였다 살아나오나 하고 왔다고 한다.
그 원인을 알아보니 2, 3중대가 가다 적군에게 발각되어 1중대는 완전 포위가 되어 살아나올 가능성이 없으니 1중대를 구출할 생각을 하지 말고 대대본부도 하남으로 이동하자고 하여 주민들까지 하남방면으로 이동한 것이었다.
까치 한마리= 까치한마리가 우리 결사대를 살렸다. 우리 정보원이 수집한 보고에 의하면 인민군 패전병들이 인제에서 집결하여 우리 결사대를 목표로 총공격을 한다고 하여 기린초등학교에 대대가 있다가 하남2리 광주동으로 이동하였으나 작전상 불리한 장소였다.
상남리 오미자고개를 막고 하남리 덕고개를 막으면 우리 부대가 나갈 길이 없게 된다. 그렇다고 더이상 갈수 없다. 경비를 강화하고 있는데, 아침 6시경 박춘하 대원이 와서 나에게 실탄 2발만 사용하도록 허락해 달라고 했다.
보급받는데도 없는 실탄을 어디다 사용할려고 하느냐고 물으니, 어머님이 병중에 계시는데 까치가 약이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까치를 잡으려고 합니다.
2발 이상 사용하지 말라고 하고 허락을 받은 박춘하는 까치를 잡으려고 총을 들고 쫓아갔다. 그 까치가 인민군놈들이 잠복대기하고 있는 덕고개솔밭 소나무에 앉는 걸 보고 총을 쏘니, 잠복하고 있던 인민군놈들은 자기들을 보고 사격을 하는줄 알고 우리부대가 있는 방향으로 집중사격을 했다.
우리 부대는 비상과 동시에 상남리 오미자고개로 후퇴를 하는데, 인민군놈들이 인제에서 남면 김부리를 지나 상남리 오미자고개로 오다보니 거리 관계로 오미자 고개를 차단하기 전에 우리부대가 고개에 가니 인민군과 만나게 되었다.
서로 사격도 못하고 인민군놈들은 배미산등으로 가고 우리 부내는 상남리 장터 마을에서 박격포로 배미산 고지에다 사격을 하니 인민군은 기관총 사격을 하여 우리 부대는 밥도 못먹고 아침 식전 70리를 후퇴하여 홍천군 내촌면 서곡리까지 후퇴를 했다.
내촌 방위군 중위와 홍인철 대장이 와서 1중대가 고생을 많이 했으니 편안히 쉬라고 하고 소총 20정을 내촌 중대에 빌려주라고 했지만, 필자는 전쟁하고 있는 총을 빌려주라고요? 그렇게는 못합니다고 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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