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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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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잊지 말자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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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8월 02일(화) 19:56 [인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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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김 종 근 기린면 6.25청년결사대 회장 | ⓒ 인제신문 | |
대대장은 미안하다고 하며 2중대장 이석조에게 가서 소총 20정을 빌려 내촌 김용하 중대에 주어 그 총을 소지하고 내촌 아홉싸리 고개를 공격했다. 결과는 윤희창 방위군 소위와 대원 5명이 전사하고 소총 20정을 전부 뺏기고 완전 실패를 했다.
우리 부대는 다음날 도관리를 지나 화장대로부터 물걸리 동창지역 일대를 방어하고 있다가 홍천군 방위군 연대장 성낙신으로부터 실탄을 보급받고 2주일만에 기린면 하남리로 복귀하기로 했다. 홍인철 대대장은 홍천 쾌석리 남면 김부리를 지나 하남리 와야동 일대를 담당하기로 했다.
청방위군 중대 최동섭과 필자는 아홉싸리 고개를 넘어 상남리를 지나 하남리 매화동 뒷산 방태산 지역을 방위하고 있다가 12월경 보병 9사단 28연대가 진주하여 방태산 현지에서 연대장이 창정 대대장 김인문에게 전선을 인계했다.
다음날 현리 기린초등학교에서 필자에게 오라고 연락을 하여 연대본부에 가니 작전과에서 국군 2개 소대를 인솔하고 필자는 하답 더디미고개까지 가도록 하고, 국군 2개 소대는 인제면 하추리까지 가도록 하라고 하여 하답은 못간다고 했다. 서리 봉덕동하고 운이덕에 인민군이 있는데 죽을 것을 알고서야 갈 수 있겠느냐고 했다.
작전과에서는 죽는다고 전쟁을 못하느냐며 두말 할 것 없이 가라고 했다. 필자는 그러면 우리 대원들은 이 지방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만일 포위 당하여도 살아나올 수 있지만, 국군들은 지역지리를 몰라서 곤란하다고 했다. 그러자 작전과에서는 필자에게 책임지라고 하지 않을테네 걱정하지 말고 명령대로 가라고 했다.
필자는 결사대를 인솔하고 목적지에 도착하여 보니 놈들의 방공호가 3개 소대가 있어 3개반으로 나눠 배치했다. 적군들이 우리가 오는 것을 다보았으므로 오늘밤에 틀림없이 공격을 해올테니 경계근무를 철저히 하고 있다가 만일 적군이 기습공격을 하면 우리가 오던 길로 가면 다 죽으니 인제방향으로 산능선으로 가다보면 신작로 가는 계곡이 있으니 그리로 가서 도로가를 제일 집결지로 하기로 했다. 다음 집결지는 하답으로 가다보면 산쪽으로 후미진 곳이 있으니 거기에서 진열을 다시 편성하고 적군의 기습공격을 막고 있다가 적군을 포위하도록 만반의 준비를 했다.
인민군들이 우리가 방공호에 있는줄 알고 방공호를 포위하고 공격을 하자 우리 중대는 적군의 후방공격을 하여 적군을 전멸시키고 하답 이흥용씨 집을 이용하여 있는데, 인제면 하추리에 갔던 국군은 패전을 하고 소대장 2명하고 3명이 살아오고 전대원이 전사를 하여 다시 28연대 본부에 연락을 하니 2개 소대를 다시 하추리로 보내 적군과 전투를 하다가 패전을 하고 소대장 2명하고 사병 3명이 살아왔다.
연대본부에 연락병을 보냈는데 아무 소식이 없어 필자가 결사대원을 연대본부에 빨리 갔다오라고 보냈더니, 가다가 돌아와서 연대본부가 후퇴하고 가설통신병들이 산에서 내려오고 있다고 했다.
큰일났구나 하고 대원들을 집합시키고 무기를 확인하고 대원들을 인솔해 서리 차순경씨 집에 가서 저녁식사를 빨리 해달라고 해서 먹고 현리 앞산 능성으로 후퇴를 하여 응골입구에 가니 인민군놈이 우리를 보고 국방군들은 다 도망가고 없는데 무얼하고 있어 했다. 필자와 대원들은 서바소 방면으로 구보를 하니 인민군놈들도 우리 중대를 따라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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