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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옥의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일본말 찌꺼기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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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청자 최대의 장물아비 이토 히로부미와 <호리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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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8월 02일(화) 19:58 [인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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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윤옥 칼럼위원(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 소장) | ⓒ 인제신문 | |
19세기 말엽부터 1945년까지의 한국의 근대사를 완전히 짓밟고, 국토까지 빼앗았던 일제와 일본인들의 온갖 죄악상을 낱낱이 밝혀 기록하기란 도저히 불가능할 것이다. 그 중의 한 영역인 역사 유적과 문화재의 약탈, 도굴, 파괴 그리고 헤아릴 수 없는 불법반출 등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저물어가는 대한제국으로 몰려든 일본 도굴꾼들이 가장 탐냈던 것은 개성 주변의 무덤을 파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던 고려청자였다. 그 무렵 도굴꾼을 뜻하는 은어인 ‘호리꾼’이란 말이 만들어졌다. -문화재약탈사-
어린 시절 어른들이 나누던 대화 가운데 <호리꾼>이란 말이 기억난다. 무슨 대화였는지는 기억할 수 없지만 커서 보니 도굴꾼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저물어 가는 대한제국에 건너와 헐값에 또는 반 강제적으로 고려청자 등 문화재적 가치가 뛰어난 물건들을 빼돌린 일본인들! 주로 고려청자 등은 고분을 파헤쳐서 손에 쥔 물건이다. 고분을 파헤치는 작업을 맡은 사람을 요즈음은 도굴꾼으로 부르지만 아직도 한국인들 중에는 <호리꾼>이란 말을 쓰는 사람이 있다. 호리꾼이 일본말인줄 모르고 쓰는 사람은 지금부터 도굴꾼으로 바꿔 써야 할 것이다.
호리꾼은 일본어 호리(堀り)+꾼으로 이뤄진 말이다. 호루<掘(ほ)る>는 구덩이를 파다, 흙을 파다 라는 뜻으로 이를 명사화 한 것이 <호리>이며 여기에 <꾼>이 붙어 호리꾼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고야마후지오 씨는 『도기강좌, 陶器講座』 권22의 <고려의 고도기>에서 “1911~1912년 사이에 일본인의 고려자기 수집열이 최고조에 이르러 당시 고려자기의 도굴과 판매로 생활하는 자가 수백 수천 명에 달했으며 그 후 금령(禁令)이 엄해져 한때 도굴은 뜸해진 듯했으나 그 후에도 고려시대 고분 도굴은 끊이지 않았다. 그간 도굴된 고려 고도기(古陶器)의 수는 몇 십 몇 백만 점으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라고 했다.
고야마 씨의 말대로 호리꾼들을 앞세워 닥치는 대로 수집한 고려자기로 사복을 채우고 치부를 한 일본인들의 행위는 용서 할 수없는 일이다. 이러한 판국에 <도굴꾼>을 가리키는 ‘호리꾼’ 이란 말이라도 하루바삐 청산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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