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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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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작은 정성으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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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8월 02일(화) 19:59 [인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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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전 재 홍 인제읍 상동리 | ⓒ 인제신문 | |
※이번호부터 인제읍 상동리 출신인 전재홍씨가 1987년 내무부 지방행정국 행정과에서 펴낸 <장한사람들>이란 책자에 실은 글을 5회에 걸쳐 연재한다.
전재홍씨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30여년간 불우이웃돕기 및 무료이발 봉사활동으로 1988년 선행시민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으며, 1992년에는 제34회 강원도문화상 사회봉사 부문상을 수상했다.
어느 화창하던 가을날, 추석을 며칠 남겨놓지 않은 오후였다. 삐걱거리는 가게문을 열고 들어서는 초라한 모습의 소년이 있었다. 허름한 누더기 옷에 책보자기를 허리춤에 동여매고 코는 한자나 흘리는 초라한 소년이었다.
내가 태어난 춘천에서 이곳 인제로 이사와서 조그마한 이발소를 운영하면서 정착한지 6개월이 되던 1970년 10월이었다.
이젠 한번씩 나의 이발소를 다녀갔던 소년들의 얼굴은 거의 기억하고 있었지만 그 소년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소년은 이발소 안을 두리번거리더니 내가 일을 하고 있어서인지 말대신 꾸벅 인사를 하며 때가 묻어 반질반질한 시커먼 옷소매로 코를 쓱 문지르곤 의자에 턱썩 주저 앉았다. 나는 손님의 이발을 마친후 의례 그러듯 머리를 자르러 왔냐는 물음에 소년은 머리를 끄덕였고 그 소년의 방문으로 인하여 오지 산간마을의 소년들에게 나의 작은 도움을 줄 수 있는 계기를 갖게된 것이다. 그때, 그 소년의 머리를 깎아주면서 얼마나 놀랬는지 모른다. 언제 머리를 감았는지 모를정도로 머리엔 때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고 이가 기어다니다가 나의 가위질 소리에 놀란듯 흰보자기 위로 뚝뚝 떨어지고 길게자란 머린데도 누가 깎았는지 그냥 썩썩 베어낸듯 가위질 자욱이 선명했다. ‘어디 사느냐’는 나의 물음에 무성의하게 ‘하추리’라는 대답을 하곤 잘려진 머리카락을 신기한 듯 내려다 보고 있었다. 소년은 이곳 읍 소재지에서 한나절 거리에 있는 산 동네에서 걸어나온 것이다. 지금이야 어디든지 도로가 생겨 교통에 큰 불편은 없지만 그 당시에는 거의 도보로 이용했고 주민들은 한나절씩 소비해가며 장을 보고 물건을 내다 팔때였으니 일부러 머리를 깎으러 오기가 힘들었을 것이고 대부분 산간오지 주민들이 그러하듯 자식들의 건강관리나 다른 관심을 가져주기엔 손이 모자란 탓도 있었기 때문에 소년의 행색이 쉽게 이해가 가는터였다.
그때 나는 소년의 머리를 깎아주면서 작은 힘이나마 이들에게 보탬이 될 무엇인가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것은 내가 가진 이발기술로 그들에게 봉사하는 것이었다.
당시, 이발소는 한달에 네번은 쉬었다. 이런 휴일을 이용하여 나의 작은 힘이나마 어려운 청소년들을 돕기위하여 휴일을 이용하여 하추리라는 동네를 찾았다. 이발기구를 작은 가방속에 챙겨놓고 산길을 걸어서 도착한 그곳은 내가 생각했던 동네보다 꽤나 멀고 너무도 작고 보잘것 없는 마을이었다.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가 그곳 국민학교 선생님을 찾아가 찾아온 용건을 말씀드리니 감사하며 쾌히 승낙을 하셨고 장소까지 마련해주셨다. 그날 동네주민과 아이들 40여명을 모아 놓고 이발을 해주었다. 아내는 ‘무슨 고생을 사서 하느냐’며 만류를 했고 이웃과 동료들의 비웃음도 있었지만 내 가슴 한 구석엔 뿌듯한 감정이 전해져옴을 느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리 넉넉한 생활이 아니라 그들의 비웃음은 더했었다. 그렇지만 나의 작은 마음으로 조금만 노력하면 어려운 처지의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마음으로 두번째 그곳을 찾았을땐 아이들과 자매결연을 맺고 매월 정기적인 이발약속까지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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