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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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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작은 정성으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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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8월 10일(수) 01:14 [인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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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전재홍(인제읍 상동리) | ⓒ 인제신문 | |
처음엔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며 손가락질하던 사람들도 나의 열성에 차츰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으며 비웃던 동료들도 성원해주기 시작했다.
남에게 도움을 준다는 것이 얼마나 보람된 일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면서 나는 점차 의욕을 갖고 성원을 약속한 동료들에 힘입어 인근마을과 국민학교를 찾아다니며 본격적으로 무료봉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들과 인연을 맺은지 4년째 되는 1974년 8월, 워낙 험한 곳이고 외부와 접촉이 극히 적은 산골인지라 서울은 물론이고 심지어 장이 서는 읍내구경도 신기해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소치국민학교 어린이 20여명을 3박4일 예정으로 서울 수학여행을 보내주기로 생각했다. 생각보다는 힘든 일이었지만 선생님과 주민들의 도움으로 실현시킬 수 있었다. 나들이에 흥겨웠던 아이들은 돌아와서도 며칠씩이나 구경거리를 서로 자랑했었고 신기해 했었다.
이런 사실이 알려져 뜻밖에 내무부장관 표창을 받게 되었다. 그러자 주위 사람들의 눈총이 따가와지기 시작했고 일부에서는 상을 받기 위해 일부러 착한 일을 한다드니 자기가 무슨 재벌이라고 그런 자선사업을 하느냐는 등의 비웃음도 있었다. 아내도 그런 이야기를 들었는지 일을 하려면 소문없이 하든지 아니면 상을 포기하라고 만류를 했다. 나로서는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일을 그만두기엔 아이들과의 약속이 있었다.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보내주겠다는 것과 다음 수학여행도 보내주겠다는 약속과 학용품 전달 등의 약속을 저버리기엔 그들의 기대가 너무 컸었고 무엇보다 초롱초롱한 눈망울들의 기다림을 잊을 수가 없았다. 그러나 여기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지금이 시작인 만큼 그들의 비웃음을 이겨내면 나중엔 나의 진실을 알게될 것이고 그땐 함께 힘을 모으도록 권해보리라는 굳은 마음으로 모든 것을 이겨내기로 했다.
그뒤 나는 몇몇 유지와 아는 분들을 찾아다니며 설득을 하기 시작했다. 동화책을 보내주자는 제의와 나의 생각을 전했다고 다소나마 협조를 부탁했다. 처음엔 주저하던 사람들이 끈질긴 나의 설득에 하나 둘씩 뜻을 같이하여 꽤나 많은 분량의 책과 학용품을 모아 약속한 대로 아이들에게 보낼 수 있었다. 기뻐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지금도 생생하고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나의 어린시절이 떠올랐다.
가난한 소작인의 5남2녀중 장남으로 태어나 밥 한번 배불리 먹을 수 없었고 가난에 찌든 생활에 평소 몸이 약하시던 아버님은 약 한첩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내 나이 스물다섯 되던 해에 43세로 세상을 뜨셨다. 그때부터 나는 일곱식구의 가장으로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갖은 고생을 했었고 가난했던 탓으로 진학도할 수 없었고 배우고 싶은 욕망은 누구보다 더했으리라 생각된다. 내가 산간마을 어린이들에게 뭔가 도움을 주고자 함은 어쩌면 나의 불우했던 어린시절이 생각났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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