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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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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작은 정성으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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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8월 23일(화) 23:28 [인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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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전재홍 인제읍 상동리 | ⓒ 인제신문 | |
이런 나의 노력이 전해져 1976년 3월, 모범군민상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남에게 내보일만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상을 받는다는 것이 몹시도 부끄러웠다.
하지만 좋은 일을해서 받는 상이라는 생각보다 그동안의 일에대한 격려와 앞으로의 행동에 대한 채찍이라는 생각으로 감사히 받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뒤로는 어떤일을 하든지 자심감이 생겼고 보람을 느꼈다. 조금이나마 수근거렸던 사람들도 이런 나의 자신감 있는 행동에 이젠 아무도 비웃는 사람이 없었다.
그해 4월엔 맹인협회 회원에게 분기마다 10여명씩 이발을 해주었고 10월엔 신문배달 청소년들에게 위문품을 전해주고 위로와 격려를 해 주었다.
1976년 10월이었다.
소치국민학교 어린이들에게 무료봉사를 해주고 돌아오는 데 그날따라 늦게 출발해서인지 곧 날이 저물어버렸다.
산골이라 갑자기 어두어지는 바람에 쉬어가려고 길옆의 한 집을 들어서려는데 여자의 비명소리와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산모 혼자 아이를 낳은 것이다. 산후조리에 필요한 물건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고 당장 끼니를 때울만한 양식도 없었다.
어둠도 아랑곳하지 않고 인근마을로 달려내려가 이미 닫힌 가게문을 두드려 미역과 양식을 사가지고 돌아와 불을 지펴 산모에게 주고나니 온몸이 땀에 흠뻑 젖었다. 다행히 산모와 아이 모두 건강하여 별 탈없이 일을 치른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날이 밝아 돌아오는 길의 아침 여명의 햇살이 그때처럼 싱그럽고 아름다와 보였던 적은 없었고 밤새의 피곤함도 모두 달랠 수 있었다.
나루터를 건너 신작로를 따라 터벅터벅 걷는데 길모퉁이에 사람들 모습이 눈에 띄었다.
웅크리고 앉아 있는 모습이 어린 소년 같았다. 가까이 다가가니 소년은 깜짝놀라 후다닥 도망을 쳤다. 재빨리 붙잡았지만 아이는 빠져나가려고 모진 애를 썼다.
몇끼 굶어 보이는 듯한 쾡한 얼굴과 다듬어지지 않은 말투, 또 소년의 차림에서 정상적인 가정의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녀석은 아마 밤새 이곳에서 밤을 새운 것 같았다. 밤새 공포와 허기로 몹시 지쳐있었지만 나를 보곤 약간의 안심을 했던지 순순히 내말에 따랐다.
처음에는 무척이나 경계하는 눈치로 전혀 입을 열지 않았으나 차분히 말을 건넸더니 울먹이며 말을 했다.
아버지의 잦은 술주정에 못이긴 어머니가 가출을 하자 형제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그후로 아버지의 주벽은 점점 심해졌다고 했다.
어제도 술에 위한 아버지의 매에 못이겨 집을 나왔고 갈곳없는 소년은 밤새 울며 다니다 지쳐 이곳에서 웅크리고 새우잠을 잔 모양이었다.
이른 가을이었지만 바람은 제법 차가웠고 소년의 몸도 몹시 차가웠다. 딱한 사정을 듣고는 아이를 데리고 집을 찾아갔다. 대문도 없이 얼기설기 쌓아놓은 듯한 집이 금방 소년의 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집주위와 방안에는 가재도구로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고 소년의 아버지는 술에 취해 잠이들어 있었다. 흔들어 깨워 보았지만 허사였다.
할 수 없이 소년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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