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2013 님의침묵 전국백일장 입상 작품
|
|
2013년 08월 18일(일) 16:00 [인제신문] 
|
|
|
[장원]
바람 / 김진영
너는 공중의 두꺼운 종잇장
어디서 네가 불어오는지 골짜기는 깊고 또 깊다
길은 달무리처럼 쏟아져 내리고
저 둥근 만월은 반짝이는 자국을 찍고 있다
세상은 아마 숨결이 비껴나가고
빈 걸상이고 여드름 돋는 허공이다
나지막히 쏟아지는 처마 위의 그 무엇이다
바깥을 닫아라
딱딱한 태양이 뜨겁게 쏘아보는 오후
불안의 수액은 미친듯이 흘러내린다
한 개의 짧은 그림자
모르는 거리를 저벅거리다 만난
어느 투명한 저녁
먼 길 가는 별 하나,
그냥 서늘하기만 해서 외롭다 그대
이런 어리석은 귀가길
세상은 늘 빈 집이어서
쉽게 들켜버린다
머무를 수 없는 개인적인 불행
너는 바람이다
[차상]-시조
바람 / 김연희
화선지 펼쳐두고 은연히 먹을 갈아
조붓한 붓끝으로 묵묵히 난을 치니
긴장마 건너 온 난분 물기 도로 토한다.
물 기운 빠져나간 칠석 지난 바람에
옛사람들 곡식이며 옷가지를 말리고
학륭은 뱃속의 책도 햇볕에 쬐었다 했다.
처서 지나 맑은 날 뱃속에 책이 없어
마음속 들어 찬 까스러기 찾아내어
화선지 바람 쐬듯이 낱낱이 널어 말린다.
[차하]
[장려]
바람 / 김하은
민들레
꽃씨가
하늘을
가로질러
날 때,
도와주는
친구가
있었네.
내가
바위에 누워
달콤한 꿈 꾸고
있을 때
이마에
맺힌
땀 방울
시원하게
날려주는
친구가 있었네
그것은
바 람.
바람 / 이현정
붉은 봉숭아물 손톱에 묶고
한 밤을 자면
퉁퉁 분 손가락이 바람에 아렸다
초저녁 바람에 어슴푸레 실리던
엄마의 젖가슴 냄새
꽁꽁 언 아스팔트 위에도 불던
애인의 입술 냄새
이상하게도 내게 바람은
소스라치게 아리고 성가셨다
이제는 안다
늙은 꽃이 돼버린 엄마에게서도
하얀 바람이 분다는 것을
꽁꽁 묶어둔 명주실 풀어
시간을 한 입 베어 뱉어
바람에 널자
퉁퉁 불어 터질 때까지
바람 / 이소영
그녀를 바라보던 그윽한눈빛이
마주치는 순간 파란 불꽃이 일고
조여든
손가락 사이로
연정이 타오른다.
한 모금 몰래 입술을 훔칠 때면
그을린 꽃잎들이 하얀 바람에 하롱댄다
연적과
동거한 삼십 년
중독된 건 나였다.
날개 / 임성호
죽음을 지키는 단단한 침묵 덕분이다 생쥐의 육신에는, 상처의 곪긴 자국 같은 파리들의 세상이다 날개가 없어 받쳐 죽었을 테니 살기 위하여, 날아보기를 위하여, 자유를 위하여, 굶주림을 위하여, 베어 낸 곳으로 버려진 것들은 미련이 없다.
이땅에 깃드는 단단한 다리는 비로소 하늘을 향했다 세상에 발을 딛고 하는 것들을 위한 파리의 기도는 닳을 줄을 모른다 하지만 비어간 곳을 다시 채운다 밤이 깊을수록 낮달이 세상을 넘겨 빈 칸에 서로의 몸을 쑤셔 넣는 일은 마치 이빨 사이로 이물질을 끼워 넣는 것과 같아 다시 죽어간 생쥐, 다시 살아가는 파리는 그렇게, 간절한 서로의 굶주림을 채워갔다.
바람 / 이종현
결 따라 내려앉은 바람을 둘러업고
사계를 걸어오다 모로 선 나뭇가지
빗금진 시간의 흔적
발 아래 묻어두었다
옹이로 자리잡은 시간의 더께 앞에
숨겨놓은 비밀 하나 바람이 걷어낸다
문 밖의 톱질소리에
정갈해진 마음의 창
한바탕 소란일어 처마 끝 몸을 풀다
고요가 깃든 궤도 마음을 털어내고
살포시 붙잡은 바람
생의 끝이 푸르다
바람 / 하채연
문풍지 덧발인 나무 문짝 앞
노인의 목피가 가을볕에 갈라지고 있다
파리하게 떨리는 잎맥 끝에 맺힌 검버섯
호미를 쥐던 손엔 옹이가 패이는데
뿌리가 굳는 동시에 하얗게 떨어지는 잔가지
빈 곳 보이며 평상 위에 쌓이고 있다
좁은 물관 속으로 흐르는 바람의 음계
뿌리가 움찔 흔들리던 고목 안으로
땅 속 깊이 박혀있던 폭풍우가
그늘의 가지되어 천갈래 갈라진다
체관 속으로 스며드는 여름의 비바람
가지 끝까지 범람하던 빗물에 잎새를 띄우고
엉겨있던 뿌리를 떠나보낸 노인
뿌리 지나 쓸쓸히 휘어지는 기둥이
마루 한 구석을 파고 든다
평상 위 빛바랜 고무신이 어느날 구름 되고
등에 양각으로 새겨지는 척추가
오랜 짝을 찾아나가는 나이테가
평생에 엇나간 마디 있느라 닳은 무릎
내가 노인의 시린 외풍을 달랠 수 있을까
고목의 잔주름진 눈가가 떨리고 있다
굴뚝 / 이미순
은행나무 잔가지 키우는
낡은 기와 지붕 뒤에 숨어 몸통을
잘 드러내지 않는 굴뚝 발치에
제멋대로 난 질경이 씨들이 여문다.
내 가슴 속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 습자지 삼아 손 끝에
겨우 잡히는 몽당 연필로
그 속 선명한 얼굴 하나 그려낸다.
누구인가! 나도 모르게 그려진,
어머니 같은,
시커먼 속 다 내어준
아궁이의 뜨거운 사랑 같은.
머리를 싸맨 흰 수건 여미며
또닥또닥 장작불을 지핀다,
가마솥 밥 눈물로 닦는다.
자꾸만 불기둥을 솟구쳐 내는
굴뚝, 어머니 온몸이 뜨겁다
그 옆에 쪼그려 앉는
가난한 내 마음도 뜨겁다.
바람 / 하은주
그대의 귓속
그것은 잎새마다
바람 머금은 골짜기
나는 주인 모르게 우리 밖에
나온 염소가 되어
가파르게 부는 바람 속을 걷는다
그때마다 나는
내 울음 속에 흔들린다
내 쉰 숨소리가 바람에 들어
들숨이 차고 내 몸속
견딜 수 없는 메아리친다
나는 다시 우리의 문을 열어
그대 귓속을 떠난다
몇 개의 바람이 흩어져서
뒤에서 불어온다
등에 바람소리 갇히고
고여 있던 물소리가
여기저기 뚝뚝 떨어진다
사람들이 떨어뜨리고 간 숨소리가
이마에 부딪히자 이마가 환해진다
더듬거리며 길을 비껴본다
독백은 항상 짧은 것이어서
말들은 갈비뼈에 부딪혀
속에서 꺼지곤 했다
갇힌 바람소리와 소용돌이친다
태양의 시선이 닿지 않아도
스스로 익어가면서
새벽에도 목구멍을 달군다
안개의 먼발치로 바람은
몸통을 감추어 길을 몽상하고
구름은 아주 쉽게
검은 바람과 섞였다
바람은 차츰 잦아들었다
흙먼지 끝 숨을 몰아쉬면
달궈진 바람
새벽별의 가슴 위로 오른다
굴뚝 / 도희정
명주실에 도란도란 엮인 감꽃목걸이가
뒤란 감나무 아래 할머니 치마폭에
앉은 언니 원피스, 위해 새초롬히 걸리던 날
더 이쁜 목걸이 만들어 달라고
부뚜막 앞에서 엄마 등에 얼굴 묻고 울었네
창 열고 들어온 달빛을 받아
잠든 언니 머리 맡에서 동그마니 눈부신 감꽃목걸이
엄마 몰래 그날 밤 아궁이에 숨겨버렸지
밥 짓는 냄새에 눈을 뜬 아침
뒤란 굴뚝에서는 모락모락 노란 연기가 오르고
감나무가 투두둑 감꼭다리를 떨구며 서 있었네
감꽃이 피는 마을을 지날 때마다
기억의 끝방으로 난 굴뚝으로
노란 연기가 피어오르는 사연이라네
바람 / 천현주
자정이 넘은 시간
암병동 208호
어둠이 내린 창 밖으로
조각달이 환하다
허공에 반만큼 물어뜯긴
저 달은 허기진 바람의 흔적,
사내의 몸에도
바람의 경로가 기록되는 중이다
네모난 숲 속의 사내,
건조한 그의 몸에는
춥고 어두운 곳에서 온
붉은 꽃이 피어났다
깡마른 가지 속으로
주렁주렁 꽃망울이 열리고
하얀 시트 사이로
바람이 지날 때마다 사내는
그르렁 그르렁 소리를 냈다
새벽마다 바람은 그의 몸에
바늘 자국보다 깊은
바람 자국을 만들었다
화판을 부풀리듯 터지는 꽃망울,
세기가 측정되지 않는 바람길로
수액마저 끊겨버리자
화라락,
그의 얼굴을 붉히던 꽃빛의 초등 消燈
조각달 아래로
꽃잎이 떨어졌다
|
|
|
|
인제신문 기자 injenews@hanmail.net “새감각 바른언론” - Copyrights ⓒ인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
|
|
인제신문
기사목록 | 기사제공 : 인제신문
|
|
|
|
|
|

|
|
|
|
실시간
많이본
뉴스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