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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동 1리 민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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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헌의 漢詩 感想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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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02일(수) 17:55 [인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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籬前何所見/ 울타리 밖 살펴보니
大小麥黃黃/ 밀 보리가 누렇거늘
那分人我飽/ 어찌해야 사람들과 넉넉함을 나눌까
生意覺舒長/ 오래도록 곰곰이 생각해 보네.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 선생의 <갈역잡영(葛驛雜詠)>이란 연작시 중 그 1작품이다. 효종(孝宗)조에 영의정을 지낸 수항(壽恒)의 아들로 15세 때 이단상(李端相)에게서 수학하고 1673년 진사(進士)에 합격하였으며, 1684년 장악원주부(掌樂院主簿)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그 후 모든 벼슬을 버리고 성리학(性理學)에 전념하였다.
형 농암(農巖) 창협(昌協)과 더불어 이름이 널리 알려졌고, 형제가 다 율곡(栗谷) 이후의 대학자로 덕업(德業)과 명성이 높았다.
1689년 기사환국(己巳換局)에 송시열(宋時烈)과 함께 화를 입고 영평(永平)에 은거하였으며, 신임사화(辛壬士禍)때 유배된 형 창집(昌集)의 일로 고심하던 끝에 이듬해인 1722년에 지병이 악화되어 죽었다. 영조(英祖)때에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추증되었다.
또한 삼연선생은 한 때 설악산에 들어와 머무르시며 영시암을 세우기도 하였는데, 그의 유마(維摩)였던 최춘금(崔春今)이 호환(虎患)을 당하고 난 후 곡운(谷雲)으로 떠났다. 위 <갈역잡영(葛驛雜詠)>이란 한시는 설악산에 머무르며 지은 연작시로 무려 300여 수가 전해온다.
햇빛도 잘 들지 않는 바위 비탈과 절벽으로 둘러싸인 손바닥만 한 텃밭에 심은 밀보리가 풍년이 들었던들 얼마나 수확하랴. 그럼에도 족하게 여기고, 굶주리는 이웃을 생각하며 어떻게 나누어 먹을까를 생각하는 마음이 얼마나 따뜻한가. 물질만능 시대. 나만 배부르면 그만이라는 이기적인 요즘 곰곰이 되짚어볼 일이다.
※이번호부터 시인이자 향토사학자인 최병헌씨의 ‘한시 감상’을 연재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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