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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헌의 漢詩 感想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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峽民食力窘生涯
두메 사람 일을 해도 밥 먹기 힘이 든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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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07일(목) 11:31 [인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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峽民食力窘生涯
두메 사람 일을 해도 밥 먹기 힘이 든데
日燒山田未下家
날마다 산전(山田)에 불 놓느라 집에 오지 못하네
秋後絶無多得粟
추수를 한다 해도 많은 나락 얻기란 힘이 드느니
輸官幾盡亦堪嗟
수납(輸納)할 관(官)도 역시 맥 빠진 채 슬픔을 감내할 밖에.
송오(松塢) 박종영(朴宗永)의 <농사일을 탄식함/歎耕者>이라는 시다. 그는 여동생이 정조(正祖)의 후궁(後宮)으로 입궁(入宮)하여 순조(純祖)를 낳아 부친이 형조판서(刑曹判書), 금위대장(禁衛大將) 등을 역임하는 화려한 문벌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으며, 그는 순조(純祖)의 외삼촌(外三寸)이면서도 내색함이 없이 조용히 지내면서 학문에 열중했다.
한 때 그는 음직(蔭職)으로 규장각 검서관(檢書官)을 지내다가 1831년에 식년시(式年試) 진사(進士) 3등(三等) 13위로 급제하였다.
그 뒤 60이 다 되는 1863년 6월에 인제현감으로 부임 하였다. 부임 후 그는 선정(善政)에 힘썼으며, 인제와 관련한 여러 편의 시문(詩文)과 제문(祭文)을 남겼는데, <농사일을 탄식함>이란 시도 그 중 한 편이다.
요즘 농민들의 소리는 한 결 같이 뼈 빠지게 일을 해도 비료 값도 안 나온다고들 한다. 정부에서도 민생(民生)을 우선으로 한다고는 하나, 정치는 민생(民生) 우선이 아니라 밥그릇 싸움에만 열을 올리고 있지 않은가?
선생께서는 막강한 가문의 배경을 갖고 있으면서도 노년에 외직(外職)으로 인제에 내려와 작은 고을 수령됨을 부끄러워 않고, 내색하지 않으며 몸소 민생을 걱정하고 보살폈으니 마땅히 비(碑)라도 세워 기릴 만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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