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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6주년 특집, 릴레이 칼럼 ② 김영조 칼럼위원(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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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정신이야말로 시대가 요구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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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27일(목) 11:15 [인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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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인제신문 | | 치사스럽게 사는 것은 오히려 치욕이니,
옥 같이 부서지면 죽어도 보람인 것을!
칼 들어 하늘 가린 가시나무를 베어내고,
휘파람 길게 부니 달빛 또한 맑구나.
만해 한용운 선사의 <어느 학생에게[奇學生]>라는 시이다. 일제에 저항하다 부서지는 삶을 살지언정 결코 타협하는 치욕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자신의 의지가 잘 드러난다.
그런 선사의 의지는 수감생활 중 다른 민족대표들이 사형당할 것을 두려워하자 “목숨이 그토록 아까우냐?”라며 똥통을 뒤엎기도 했으며, 그토록 가까웠던 최린, 최남선, 이광수 등에 대해서도 ‘친일파’라며 상종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분명했다.
감옥에서 나온 뒤에도 선사는 그를 회유하려고 조선총독부가 성북동 일대 20만 평의 나라 숲을 넘겨주겠다는 것을 한마디로 거절하고, 총독부의 지시를 받은 청년이 돈 보따리를 들고 오자 뺨을 때려 쫓아 보냈다. 그뿐만 아니라 조선총독부와 마주하기 싫어 성북동 집 “심우장”을 남향이 아닌 북향으로 지을 정도로 철저했으며, “나는 조선 사람이다. 왜놈이 통치하는 호적에 내 이름을 올릴 수 없다.”라면서 평생을 호적 없이 지냈다.
또 선사는 결심공판의 최후발언에서 “‘그대의 할 일은 덕에 있지 산하에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덕을 닦지 않으면 이 배 안에 있는 모두가 적이 되리라’라고 한 위나라 오기의 말처럼 너희들도 강병(强兵)만 자랑하고 수덕(修德)을 정치의 요체로 삼지 않으면 국제사회에서 고립하여 마침내 패망할 것을 알려두노라”라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일제를 나무랐던 사람이다.
삼일만세운동 민족지도자 33인 대부분이 변절할 때 고고하게 지조를 지키며, 겨레를 맨 앞에서 이끌었던 선사. 그를 벽초 홍명희는 “만해 한 사람 아는 것이 다른 사람 만 명을 아는 것보다 낫다”라고 했으며, 만공 선사는 “이 나라에 사람이 하나 반밖에 없는데 그 하나가 만해”라고 했다.
인제신문 창간 6주년을 맞았다. 또 얼마 전에는 제18대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이때 이런 만해 이야기가 떠오르는 것은 웬일일까?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서로가 서로를 헐뜯는 이야기도 오갔다. 일부 국민은 우리에게 존경할만한, 나라를 맡길만한 사람이 없다는 한탄도 한다. 그래서 선사의 가르침이 절실하고, 선사의 정신을 모든 국민 아니 정치인들이 닮았으면 하는 마음인 게다.
만해정신이야말로 이 시대가 요구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리라. 인제신문은 창간 6주년을 넘어 60년, 600년이 되도록 만해 선사의 정신을 올곧게 지키는 언론이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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