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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헌의 한시감상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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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19일(수) 14:45 [인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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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인제신문 | 樹密藏村舍/ 촌사(村舍)는 빽빽한 숲속에 가렸고
棧高閣路人/ 사람 길은 사다리처럼 높이 걸렸어라
蒼頭攀去泣/ 노복(奴僕)을 붙잡고 울며 가기는
白髮過來新/ 백발이 되어서야 처음이로세.
황응규(黃應奎:1518~1598)의 <馬奴棧路/마노(馬奴)의 잔로(棧路)>라는 시다. 그의 자는 중문(仲文), 호는 송간(松澗). 봉예랑 귀경(貴卿)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희성(希星)이고, 아버지는 우찬성 사우(士祐)이며, 어머니는 오수정(吳壽楨)의 딸이다. 주세붕(周世鵬)·이황(李滉)의 문인이다. 1569년 알성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전생서주부(典牲署主簿)를 거쳐 호조·형조·공조의 정랑·좌랑 등 관직을 지냈다. 1588년 사직하고 고향에서 은거하다가 1592년 임진왜란 때 양곡을 군량으로 바쳐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올랐고, 1594년 동지돈녕부사가 되었다. 다시 향병대장으로서 장정·군량을 모아 출전하였다. 저서에 《송간고(松澗稿)》가 있다.
지난 10월 3일 인제군에서는 인제합강문화제 개막행사의 일환으로 가장행렬에 ‘현감부임순력행차’를 재연한바 있다. 부임행차인지 순력행차인지 제목부터가 애매모호하다. 위에 소개한 <마노(馬奴)의 잔로(棧路)>라는 시는 황응규 현감이 인제로 부임할 때의 정황을 글로 옮긴 것이다. 또 1733년 박성원(朴聖源:)의 지은 「한설록(寒雪錄)」을 보면 ‘문 밖은 소나무 울타리를 두른 집이 백 가구도 되지 않는지라 관청이 있는 곳 같지 않았다. 기운 저녁 햇살이 산에 비치고 있을 때 덮개를 휘날리고 피리를 불면서 들어오는 것은 태수가 곡식 나눠주는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어 당시의 인제 실상을 상상할 수 있다.
앞의 시는 부임 행차이고, 뒤의 기행문은 순행의 의미를 갖는다. 이 두 글을 볼 때 현감 부임행차나 순력행차 재연과는 거리가 먼 듯하다. 그렇다고 전혀 근거 없는 바는 아니다. 다만 당시 인제의 거류민이 백여 가구도 안 되어 관청이 있는 것 같지도 않다는 표현에 비하여 지나치게 과장되어 격에 맞지 않다는 뜻이다. 민속을 보존하고 전승하는 일은 필요하나 올바로 보존되고 전승되어야지 과장되거나 왜곡되어서도 안 되기 때문에 고증(考證)을 거쳐서 올바로 전승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 한 수를 소개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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