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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칼럼 / 한국인의 등산복과 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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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19일(수) 14:48 [인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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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최용건 주필 | ⓒ 인제신문 | 최종 이르러야 할 인간 공동체는 배려의 정신으로 가득한 사회시스템이어야 한다. 깨달음을 얻은 모든 성현들의 가르침이 한결같이 배려를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배려란 남을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는 마음씨, 사랑과 자비와 인의 마음씨다. 다시 말해 역지사지하여 자신과 남이 결코 다르지 않음을 깨달았을 때 지니게 되는 마음씨다. 걸인에게 행하는 적선도 결국 불행하고 남루한 걸인의 모습에서 자신의 과거나, 현재나, 미래의 모습을 읽었기에 행해질 수 있는 것이다.
타인의 입장을 헤아리자
배려란 남을 돕는 마음씨지만 소극적으로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마음씨기도 하다. 공통점은 다 같이 타인의 입장을 헤아리는 데 있다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구상 모든 국가의 시스템은 배려의 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한 진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선진국일수록 사회적으로 남을 위한 배려의 기풍이 강하다. 그런 나라에서는 일찍이 자녀들을 위한 밥상머리 교육으로서 배려의 정신을 강조하곤 하는 데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엔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일본의 경우엔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삶을 가르친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떠한가? 실망스럽게도 다분히 투쟁적이다. 남에게 지지 말라고 아이들을 가르친다. 기죽지 말라는 것이다.
일차적으로 학부모 자신이 자녀가 학교생활에서 조금이라도 불이익을 당하는 듯 하면 학교엘 쫓아가 아이의 담임선생에게 항의를 하곤 하는데 자신의 자녀가 기죽어 살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의도에서다. 낯 뜨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선진국의 배려의 기풍과는 거리가 먼 우리의 교육현실이다.
이 같은 타인에 대한 무 배려 풍조는 아이들 교육문제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언제부턴가 공공장소에서의 사적인 언사가 높아지기 시작하더니 최근 들어선 그 소음이 시각적 폐해로까지 탈바꿈 하여 주변 환경과는 어울리지 않는 알록달록한 등산복 차림이 일상생활공간에 만연화 되었다.
등산복의 기능은 그 효율성이 등산 시에 100% 발휘된다. 등산복은 등산 시에 입는 것이 교양인의 합리적 판단이며 민주시민으로서 지켜야 할 복장예절이다. 옷 입을 자유를 얘기한다지만 등산복을 생활복장으로 전용한다는 것은 자유와는 관계없는 판단잘못의 소산일 뿐이다.
한국인들은 셋 이상만 모이면 대화소리가 필요이상으로 높아진다. 소음 수준이다. 그처럼 주변 환경을 고려치 않는 한국인들의 알록달록 등산복 차림의 도심보행은 소리로 비유하자면 마찰음이자 시끄러운 소음이다. 심지어는 등산복 차림으로 직장 출근까지도 한다 하니 비례(非禮)가 지나쳐 야만수준이라 할만하다.
등산복 차림의 도심보행
소음이 청각적 폭력이라 한다면 환경을 고려치 않는 복장과 칼라의 선택은 시각적 폭력이다. 배려의 정신이 없는 이기적 삶은 공동체 구성원간의 갈등을 유발한다. 의사통일을 어렵게 하고 나아가 공동체에 방향성을 잃게 하여 우왕좌왕 혼란을 가중 시킨다.
개인적 편함만을 추구하자면 무엇인들 못하겠는가. 공공장소에서의 소음처럼 방만한 개인의 자유가 공동체에 불편을 끼치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개인적 편함을 떠나 환경과 어울리는 소리를 내며 의상을 착용할 때 구성원간에 소통이 원활히 이루어져 생기 있는 사회가 될 것이다. 국민 모두가 때와 장소와 타인에 대한 배려심을 잊지 않을 때 국격도 갖추게 될 것이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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