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최병헌의 漢詩感想 [34]
|
|
2015년 06월 25일(목) 08:52 [인제신문] 
|
|
|

| 
| | ⓒ 인제신문 |
울타리 밖까지 호랑이가 와/籬外虎狼來
나그네들 밤중에 벌벌 떨지만/行旅中宵喘
산골사람 예사로이 더불어 살며/峽氓習與居
꾸짖어 돌려보냄을 작은 개 같이하네./叱退如小犬
조선시대의 문신 이유원(李裕元)의 <인제점/麟蹄店>이란 시다. 그의 자는 경춘(景春)이며, 호는 귤산(橘山), 묵농(默農)이다. 영의정을 지냈으며, 1882년 6월 임오군란으로 민비의 생사(生死)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대원군이 장례를 강행하자 극력 반대했다. 그해 7월 전권대신(全權大臣)으로 일본 변리공사(辨理公使) 하나부사와 임오군란으로 인한 피해 변상, 공사관 경비병 주둔권 부여를 핵심으로 하는 제물포조약을 체결· 조인했다. 글씨를 잘 썼으며 특히 예서(隸書)에 뛰어났다. 저서로 〈가오고략 嘉梧藁略〉·〈귤산문고 橘山文稿〉·〈임하필기 林下筆記〉 등이 있다. 시호는 충문(忠文)이다.
위 소개한 시는 인제점(麟蹄店)에 들려 하룻밤을 유숙하며 산촌 사람들의 어질고 순박한 생활상을 가감 없이 표현한 시다. 지금은 거의 멸종위기에 놓여있지만 인제 지역에는 1960년 대 초만 하여도 호랑이가 자주 출몰하였다고 원로 분들은 증언하고 있으며, 삼연(三淵)선생의 문집에도 그를 따르던 유마(維摩) 최춘금(崔春今)이 호환(虎患)을 입은 후 인제를 떠났다고 기록되어 있고, 또 박종영(朴宗永) 현감 재임 시에 쓴 시에도 <탄호경(嘆虎警)>이라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그 외에도 여러 차례 호랑이가 출몰했다는 기록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많은 무리가 서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나그네로 잠시 유숙(留宿)하는 이들은 두려움에 벌벌 떨지만, 산골 사람들은 무리지어 어울려 살며, 작은 강아지 다루듯이 꾸짖어 보낸다고 하였다. 효자(孝子) 열여(烈女)와 관련한 삼강행실(三綱行實)에도 호랑이가 그들을 보호해 주었다는 내용들이 자주 등장하곤 한다. 독불장군 없다는 말이 있듯이 어울려 사는 것이 세상살이라면 힘 있다고, 재물이 많다고, 혼자만 거들먹거리며 살기보다는 이웃과 같이 나누며 산다면 얼마나 좋은 세상. 신바람 나는 세상이 오지 않겠는가? 아아! 그런 날이 오기는 올 것인가?
|
|
|
|
인제신문 기자 injenews@hanmail.net “새감각 바른언론” - Copyrights ⓒ인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
|
|
인제신문
기사목록 | 기사제공 : 인제신문
|
|
|
|
|
|

|
|
|
|
실시간
많이본
뉴스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