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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헌의 漢詩 感想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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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7월 05일(화) 10:52 [인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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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인제신문 | 來從何處來/ 찾아오는 곳은 어디이고
落向何處落/ 지는 곳은 어디인가
姸姸細如眉/ 눈썹같이 고운 달 곱기도 한데
遍照天地廓/ 하늘과 땅 사이를 두루 비추네
조선 중기의 문신 정온(鄭蘊:1569~1641)의 <見新月/초승달>이란 시다.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휘원(輝遠), 호는 동계(桐溪)·고고자(鼓鼓子)이다.
1601년에 진사가 되고, 1610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시강원겸설서·사간원정언을 역임하였다. 임해군옥사에 대해 전은설(全恩說)을 주장했고, 영창대군이 강화부사 정항(鄭沆)에 의해서 피살되자 격렬한 상소를 올려 정항의 처벌과 당시 일어나고 있던 폐모론의 부당함을 주장하였다.
인조반정 후 광해군 때 절의를 지킨 인물로 지목되어 사간·이조참의 ·대사간 ·대제학· 이조참판 등 청요직(淸要職)을 역임하였다. 특히, 언관에 있으면서 반정공신들의 비리와 병권장악을 공격하였다. 또 폐세자(廢世子) 지(祬:광해군의 아들)와 선조의 서자 인성군 공(仁城君 珙)의 옥사에 대해 전은설을 주장, 공신들을 견제하였다.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행재소(行在所)로 왕을 호종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 때에는 이조참판으로서 명나라와 조선과의 의리를 내세워 최명길(崔鳴吉) 등의 화의주장을 적극 반대하였다. 강화도가 함락되고 항복이 결정되자 오랑캐에게 항복하는 수치를 참을 수 없다고 하며 칼로 자결하려 했으나 목숨은 끊어지지 않았다.
그 뒤 관직을 단념하고 덕유산에 들어가 조를 심어 생계를 자급하다가 죽었다. 숙종 때 절의를 높이 평가하여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어려서부터 당시 경상우도에서 명성이 자자하던 정인홍(鄭仁弘)에게 사사하여 그의 강개한 기질과 학통을 전수받았다.
오는 곳을 모르고, 가는 곳을 모르지만, 온전하지 못하면서 눈썹같이 연약한 몸으로 세상을 밝혀주는 초승달. 왜 태어났는지도 모르지만,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죽기 전에 작은 점 하나라도 찍어놓고 가야 할 텐데 더없이 시간만 죽이고 있자니 정말이지 부끄럽고 부끄럽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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