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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헌의 한시감상[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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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4월 18일(월) 11:51 [인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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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村舍)는 빽빽한 숲속에 가렸고 /樹密藏村舍
사람 길은 사다리처럼 높이 걸렸어라 /棧高閣路人
노복(奴僕)을 붙잡고 울며 가기는 /蒼頭攀去泣
백발이 되어서야 처음이로세. /白髮過來新
조선 중기의 문신 황응규(黃應奎:1518~1598)의 <마노잔로/馬奴棧路)>라는 시다.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중문(仲文), 호는 송간(松澗). 봉예랑 귀경(貴卿)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희성(希星)이고, 아버지는 우찬성 사우(士祐)이며, 어머니는 오수정(吳壽楨)의 딸이다.
주세붕(周世鵬)·이황(李滉)의 문인이다.
1543년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고, 성균관에 입학하여 여러 차례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그 뒤 태학(太學)에서 그 재주를 아껴 추천하여 전함사별제(典艦司別提)가 되고 장흥고직장(長興庫直長)에 이르렀다.
1569년 52세로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 전생서주부(典牲署主簿)에 임용되고, 호조·형조·공조의 정랑과 좌랑 그리고 여러 고을의 수령을 역임하였다. 1588년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은거하였고, 소명이 있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양곡을 군량으로 바쳐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오르고, 1594년 동지돈녕부사가 되었다. 또한, 향병대장(鄕兵大將)으로 추대되어 마을사람들에게 의기를 고취하고 장정·군량 등을 모집하여 출전하였다.
초서(草書)를 잘 썼다. 저서로 『송간고』가 있다.
<마노잔로>라는 이 시는 그의 나이 60에 인제현감으로 부임당시의 어려움을 읊은 시다. 이 당시 잔로의 길이가 2리 약 800m에 달한다는 기록이 전해온다. 이 잔로의 원형을 복원하여 관광자원화 하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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