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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헌의 한시감상[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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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5월 02일(월) 11:43 [인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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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인제신문 | 탄환의 무정함이여!/丸子太無情
발목을 다쳐 나아갈 수 없구나 / 踝傷足不行
차라리 심장에 맞았더라면/若中心腹裏
욕됨 없이 저 세상에 갔을 것을/ 毋辱到瑤京
한말 의병대장 운강 이강년(李康秊:1861~1908)의 시다. 본관은 전주이고, 자는 낙인(樂仁. 樂寅)이며 운강(雲岡)은 그의 호다. 대대로 벼슬을 하지 않던 집안에서 태어나 1880년 무과에 급제하여 절충장군행용양위부사과(折衝將軍行龍驤衛副司果)로서 선전관(宣傳官)이 되었으나,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나자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1895년 8월 민비가 일본군에 의해 학살되고 단발령이 내려지자, 1896년 1월 11일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이때 안동관찰사 김석중(金奭中)과 순검 이호윤(李浩允), 김인담(金仁覃) 등 3명을 체포하여 농암장터에 운집한 군중 앞에서 효수(梟首)했다. 이어 유인석(柳麟錫)을 찾아가 사제(師弟)의 의를 맺고, 유인석 의병부대의 유격장으로서 문경· 평천· 조령 등지에서 활약했다.
1907년 일본의 침략이 노골화되어 헤이그 밀사사건으로 고종이 강제로 물러나고 한일신협약으로 한국군대가 해산 당하자, 영춘(永春)에서 더 큰 규모의 의병부대를 일으켰다. 1908년 6월에는 충청도와 경기도 강원도 일대에서 항일 무장 투쟁을 전개하였으며, 특히 인제의 백담사 부근에서의 전투에서는 큰 전과를 올리기도 하였다. 6월 4일 청풍에서 전개된 싸움에서 적탄에 왼쪽 다리 복사뼈를 맞아 일본군 수비대에 잡혔다.
제천으로 압송된 후 일본인들이 그의 상처를 치료하고자 하였으나 거절하고 일본인들이 가져다주는 음식은 거절하고 보지도 않았다. 앞의 시는 그 당시의 심경을 노래한 것인데 그의 불굴의 의지와 기개가 실로 존경스럽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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