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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레빗 / 이상재 선생 사회장에 10만 명이 몰렸다

푸른솔겨례연구소

2017년 04월 12일(수) 20:17 [인제신문]

 

↑↑ ▲ 독립운동가 월남 이상재 선생(국가보훈처)

ⓒ 인제신문

오늘은 독립운동가 월남(月南) 이상재(李商在, 1850~1927) 선생의 장례가 우리나라 최초 사회장으로 치러진 날입니다. 당시 서울 인구가 30만이었는데 선생의 사회장에 10만 명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니 선생이 민중들로부터 얼마나 큰 존경을 받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상재 선생은 1896년 서재필 등과 독립협회를 창립하고, 조선기독교청년회연합회 회장과 조선교육협회장으로 활동하면서 항일 독립운동에 헌신했지요. 몇 차례나 이어진 투옥도 마다 않고 일제에 맞서 민족교육운동을 폈으며, 1927년에는 신간회(新幹會) 회장에 취임하여 민족 지도자로 활동했습니다.

“대감들은 동경으로 이사를 가시지요?” 이 말은 우리나라가 일제에 의해 국권을 강탈당한 경술국치가 일어난 직후 대표적인 친일파였던 이완용, 박제순을 만난 자리에서 이상재 선생이 한 말입니다. 이에 이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해를 못하겠다는 뜻으로 쳐다보자 선생은 다시 “대감들은 나라 망하게 하는 데 선수 아니십니까? 대감들이 일본으로 이사 가면 일본이 망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라고 조롱했다고 합니다.

선생의 일화 가운데 또 하나는 고종 때의 일입니다. 선생이 고종을 직접 뵐 기회가 있었는데 외세에 빌붙어 매관매직을 일삼던 김홍육 일파가 고종에게 보자기에 싼 뇌물을 바친 것을 보았습니다. 그를 본 선생은 “상감 계신 방이 왜 이리 추운가?”라고 큰 소리로 말하며, 서슴없이 그 뇌물을 보자기째 난로에 넣어 태워버렸지요. 그런 다음 통곡하며 고종 앞에 엎드려 벌주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고종은 도리어 눈물을 지으며 이상재 선생의 손목을 잡아주었다고 합니다. 1962년 선생은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 받았습니다.

인제신문 기자  inje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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