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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기의 시 읽기, 삶 읽기- 시에게 길을 묻다 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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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03일(화) 19:13 [인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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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손흥기 (본지 논설주간, 문학평론가) | ⓒ 인제신문 | 저 햇살과 바람과 들꽃과 더불어
햇살 짠하게 좋은 지난 주말, 월학(月鶴)이라고 하는 이름도 이쁜 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시를 있는 형님 집에 다녀왔습니다. 그곳에는 마을 앞을 휘돌아 가는 도리천이라는 냇강이 있는데요, 금강산 골짜기에서 흘러온 물과 우리나라 최초로 국제 람사조약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대암산 용늪에서 시작한 물이 만나서 이룬 작은 내(川)입니다.
구불구불 끊어질 듯 이어지는 이 강은 이제 우리 땅에서도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몇 안되는 사행천(蛇行川)의 하나지요. 마을회관 구판장에서 막걸리를 한 통 사서 쉰내가 물씬 풍기는 열무김치를 안주로 들꽃들 무연히 흔들리는 도리천 둑방에 앉아 한 잔 했습니다.
오월,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오월은 언제나 무량하기만 합니다. 계절을 가로 질러 흐르는 도리천과 신록으로 가득 찬 내설악 등성이를 바라보노라면 마음은 가없이 맑고 청신해져서 저홀로 감동에 젖어 눈시울 붉어집니다.
이제 봄이, 그 사연 많던 봄이 가려나 봅니다. 저만치 바람에 일렁이는 튼실한 보리밭 이랑을 따라 봄이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봄내 노란꽃을 피워 자잘한 기쁨을 안겨주었던 민들레는 덧없이 꽃씨를 풀풀 날려 보내고, 하얀 개망초며 토끼풀꽃, 홍자색 자운영, 패랭이꽃이 지천으로 피어 꿈결처럼 하늘거리고 있습니다.
들꽃, 언제 한 번 스스로를 꽃이라고 내세워 본적 없는 꽃. 화려함, 아름다움과는 애시당초 거리가 먼, 꽃이라 하기엔 너무나 흔해서 그냥 지나쳐 버리기 십상인 꽃들. 누구 하나 따듯한 눈길 한 번 안 보내도 때 되면 꽃피우고 철 되면 제 스스로 몸 풀어 이 땅 곳곳 낮은 곳으로 임하는 꽃들.
참 맑은 햇살에, 무심하게 피어있는 들꽃들의 아름다움에, 이따금 불어오는 강바람에, 무엇보다 한 잔의 술에 마음까지 얼큰했던 하루였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그런대로 살 만한 거라고, 그럭저럭 이만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마음을 다독이며 선홍빛 노을 부서지는 강변으로 정희성의 「저문 강에 삽을 씻고」를 흥얼거리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저 햇살과 바람과 들꽃과 더불어 두루 행복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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