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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와 심우장(尋牛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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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린천 인문학 열전-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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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8월 03일(화) 13:23 [인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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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김좌훈
(본지 발행인, 만해사상실천선양회 이사) | ⓒ 인제신문 | |
▢ 심우장(尋牛莊)에 깃들다
만해 한용운 선사는 55세가 되던 1933년, 백양사의 벽산(碧山) 스님이 기증한 지금의 성북동 집터에 심우장(尋牛莊)이라는 집을 짓고 입적(入寂)할 때까지 여생을 보냈다. 이 집을 지을 때 주위 사람들은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볕이 잘 드는 남향으로 터를 잡을 것을 권유하였다. 그러나 만해는 남쪽에 있는 조선총독부와 마주하기 싫다고 하여 끝내 동북 방향으로 집을 틀어 버리고 말았는데 여기에서 만해 선사의 민족적 자존심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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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인제신문 | |
한용운의 서재였던 온돌방에는 심우장(尋牛莊)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심우장은 ‘깨우침을 찾아 수행하는 과정을 소를 찾는 일에 비유’한 불교 설화에서 따온 것이다. 또한 선가(仙家)에서는 심우장을 ‘무상대도(無上大道)를 깨치기 위해 공부하는 집’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심우장은 만년의 만해와 가족들에게 큰 안식처가 되었다. 이곳에서 만해는 마지막까지 몸과 마음을 닦는데 게을리하지 않았다. 조선 땅 어느 구석도 일제의 발아래 짓밟히지 않은 곳이 없었지만 이곳 심우장 만은 민족의 혼을 간직한 마지막 보루였다.
▢ 절개와 지조의 삶
만해는 교우관계에 있어서 좋고 싫음이 분명하여 뜻을 함께한 동지들에 대해서는 매우 깊은 의리를 보여 주었다. 만주에서 독립투쟁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마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루던 일송(一松) 김동삼(金東三)이 1937년 3월 옥중 순국하자, 유해를 심우장으로 모시고 와서 5일장을 치루기도 했다.
하지만 변절한 친일인사에 대해서는 설령 친분이 깊거나 함께 독립운동을 했더라도 단호히 절교하고 일체 상대하지 않았다. 3・1운동 당시 동지였던 최린(崔麟)이 변절한 뒤 심우장을 방문한 일이 있었으나 그를 끝내 만나주지 않았다.
그 후 다시 방문한 최린은 만해 선사가 부재중이자 딸에게 돈을 쥐어주고 돌아갔다. 이 사실을 안 만해는 부인과 딸에게 호통을 치고, 바로 명륜동 최린의 집으로 달려가 그 돈을 집어 던지고 되돌아 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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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인제신문 | |
▢ 풍난화 매운 향기-만해 가시다.
일제말기 최후의 발악적인 총동원체제 아래 자행된 황민화정책의 거센 파도 속에서도 선생은 민족적 자존심을 꺾지 않았다. 그리하여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1940년 창씨개명 반대운동, 1943년 조선인 학병출정 반대운동 등을 펴기도 하였다.
우리 민족이 낳은 위대한 독립투사이며 민족시인이자 불교의 대선사인 만해 선사는 1944년 6월 29일, 일생을 통해 그리던 조국광복을 눈앞에 두고 입적하였다. 성북동 낙락장송의 신록이 왕성한 시절이었다. 만해 한용운, 그는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간절하게 ‘님’을 찾다가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먼 곳으로 떠나갔다. 법랍 40년, 향년 66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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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인제신문 | |
풍난화 매운 향기 님에게야 견줄손가 이 날에 님 계시면 별도 아니 더 빛날까 불토가 이 위 없으니 혼아, 돌아오소서.
-위당 정인보
만해의 입적(入寂) 소식을 듣고 달려온 위당 정인보는 위와 같은 추모의 시를 남겼다. 만해의 장례는 전통 불교의식에 따라 화장하였으며, 유해는 망우리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일제 총독부는 만해의 장례식에 조차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지 못하게 감시했다. 고뇌의 세속 중생 곁에서 늘 함께 한 만해 한용운 선사는 우리에게 영원한 ‘풍난화 매운 향기’로 남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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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인제신문 | |
국가 등록문화재 제519호로 지정 된 만해 한용운 묘는 망우리공원에 부인 유숙원의 묘와 나란히 조성되어 있다. 2기의 봉분 앞으로 상석, 향로석, 비석이 배치되었다. 비석은 1981년 12월 <만해사상연구회>가 세웠으며 비문의 글씨는 근현대 서예의 대가 여초 김응현 선생이 썼다.
정부는 만해가 생전에 쌓은 심오한 공덕과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으며 만해 선사께서 만년을 보낸 심우장은 1985년 7월 5일 서울시지정문화재 기념물 제7호 지정 되였고, 2019년 4월 8일 사적 제550호로 승격하여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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