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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기의 시 읽기, 삶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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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게 길을 묻다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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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07일(화) 11:33 [인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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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손흥기 (본지 논설주간, 문학평론가) | ⓒ 인제신문 | | 오일장 이야기
오늘은 닷새마다 서는 읍내 오일장(五日場)을 다녀왔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장(場)은 단순하게 물건을 사고파는 경제적인 의미뿐만 아니라,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이웃마을의 친구들을 만나기도 하고, 정보를 주고받는 나눔의 자리이기도 했으며, 혼담이 오가기도 하여 전통사회에서 장권(場圈)은 혼인권(婚姻圈)과 같기도 했지요.
뿐만 아니라, 여흥을 돋우는 씨름판이나 경향각지의 놀이꾼들이 모여들어 재주를 부리기도 하여 훌륭한 볼거리와 함께 농촌사회 축제날이 되기도 했지요. 따라서 오일장은 서민들의 삶의 애환을 담고 있으며, 그 지역의 문화를 담고 있는 소중한 현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산업사회로 들어서면서 영욕(榮辱)을 함께 했던 우리의 전통 오일장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고, 과거의 그 화려했던 명성은 어쩔 수 없이 세월 저편으로 등 떠밀려 이제는 겨우 명분만 유지 할 뿐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내설악 오일장도 예외는 아니어서 삐까번쩍한 대형 슈퍼마켓이나 현대식 마트에 밀려 날로 쪼그라들고 있는 형편이지만, 그래도 저는 오일장이 서는 날이면 이런저런 핑계를 내서 장터를 한 바퀴 도는 게 산촌에 사는 작은 재미이고 취미이기도 합니다.
장터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괜히 값을 물어보기도 하고, 장돌뱅이 20년에 아들 둘 모두 서울의 ‘큰 대핵교’를 보냈다는 올챙이국시 아줌마의 좌판에 쭈그리고 앉아 한 그릇에 이천 원하는 국수를 시켜 놓고 시큼한 열무김치를 얹어 후룩후룩 마시며 아줌마와 너스레를 떨기도 하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손두부에 풋고추 썰어 넣은 양념간장을 듬뿍 얹어 낯익은 얼굴들을 불러 모아 막걸리를 한 잔 하는 재미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제 눈길을 끄는 것은 겨우내 땅속 깊이 묻어 두었던 감자 몇 알, 사랑방 시렁에 걸려 있던 메주 두 어장, 혹은 된장에 박아 두었던 오이며 곰취짱아치 등속을 펼쳐놓고 양지쪽 담벼락에 기대어 만사태평하게 졸고 있는 할머니들의 모습이었습니다. 다 팔아 봐야 돈 만원 어치가 될까말까 한 물건들을 고만고만하게 펼쳐 놓고 있는 할머니들은 아마도 돈을 벌기보다는 햇살 좋은 봄날 나들이라도 하는 기분으로, 읍내 구경이라도 할 양으로 나온 듯 싶습니다.
낯이 익은 몇몇 장꾼들과 눈인사를 나누고 겨우내 뵈질 않던 점봉산 약초꾼 정씨와 춥고 긴 겨울을 보낸 산마을 소식을 나누며 막걸리를 한 잔 하고 어물전에 들러 내가 좋아하는 간 고등어 한 손과 두릅나물을 사 가지고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고등어는 무를 숭숭 썰어 넣고 지지고, 새콤달콤한 초장을 만들어서 두릅나물과 막걸리를 한 잔 더 해야겠습니다.
가난한 우리 이웃들의 삶의 애환, 그들의 활기찬 날개짓 소리와 희망이 있는 곳. 우리 땅 곳곳에 남아 있는 오일장을 돌며 그들의 삶의 소리와 숨결을 어눌한 제 글로 담아보겠다는 생각을 감히 해봅니다.
언감생심(焉敢生心), 가당키나 하겠습니다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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