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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위해 희생했는데”…인제군, 정부 인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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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와 조선독립의 서-1

내린천 인문학 열전-②

2021년 04월 20일(화) 17:04 [인제신문]

 

↑↑ 김좌훈 (인제신문 발행인 겸 만해사상실천선양회 이사)

ⓒ 인제신문


‘피고는 금후에도 조선의 독립운동을 할 것인가?’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庚戌國恥)’
우리나라 역사상 국권을 상실한 치욕의 날이다. 일제의 조선 강점 이후 조선총독부는 무단정치 10년을 통하여 국민들의 눈과 귀, 입을 막아버리고 폭압적인 통치는 민중을 도탄에 빠뜨렸다.

1918년 12월 미국 윌슨 대통령의 “각 민족은 정치적 운명을 스스로 결정 할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다른 민족에게 간섭 받을 수 없다.”는 내용의 민족자결주의를 제창하자 세계정세는 급격하게 변하고 약소민족은 자주독립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갔다. 이러한 분위기는 만해 선사의 끓는 가슴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었다.

만해 한용운은 민족의 독립과 자존을 세계만방에 알리기로 마음먹고 1919년 1월, 최린 · 오세창 등과 조선독립운동을 숙의, 결의를 다졌고 천도교·기독교·불교계 등 종교계를 중심으로 독립만세 거사를 계획, 마침내 3.1만세 운동의 주도적 도화선이 되었다.

□ 3·1 독립만세 운동
남강 이승훈 선생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인 16명, 손병희 선생이 이끄는 천도교인 15명, 만해 선사를 비롯한 불교계 2명 등 33인의 민족대표는 세계만방에 독립을 선포할 것을 결의하고 손병희 선생을 대표로 추대했다. 육당 최남선이 쓴 <기미독립선언서> 초고에 만해 한용운 선사가 가필하고 공약 3장을 추가했다. 최남선의 초고(礎稿)가 온건한 반면 공약 3장은 실천적이며 의지가 뚜렷하게 담겨 있었다. 특히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쾌히 발표하라’는 공약 3장 2항은 33인의 취조·재판 과정에서 내란죄 죄목이 되기도 했다.

기미년 3월1일. 서울을 비롯, 전국 각지에서 만세 시위운동이 전개됐다. 만해 한용운 선사를 비롯한 민족대표 33인은 종로 태화관에서 “이제 우리는 조선의 독립을 선언했으니 죽어도 한이 없다” 만해의 축사와 ‘대한독립만세’를 선창 후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마포경찰서에 수감되었다. 잡혀간 독립지사들은 심한 고초를 당했는데 국가내란죄로 사형된다는 소문에 모두 마음이 약해졌다. 미결수로 있는 동안 겁에 질려 눈물을 흘리는 그들에게 만해는 똥통을 둘러엎으며 “나라 잃고 죽는 것이 서럽거든 당장에 취소하라!”고 불호령을 내렸다.

↑↑ 1910년 8월 29일 발행된 조선총독부 관보에 게재된 한일 병합 조약의 한국어 원문

ⓒ 인제신문


1919년 3월11일 재판정에서 일본인 검사는 “피고는 금후에도 조선의 독립운동을 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만해는 “그렇다. 계속해서 어디까지든지 할 것이다. 반드시 독립은 성취될 것이다”고 명쾌하게 대답했다. 이어 “만세운동으로 처벌될 줄 알았는가?” “내 나라를 세우는데 힘을 다할 것이니, 벌을 받을 리 없을 것이다” 한용운의 이 같은 의지는 조금도 흔들린 적이 없었다. 5월8일, 경성지방법원의 판사 또한 같은 질문을 했다. “피고는 금후도 조선 독립운동을 할 것인가?” 한용운은 “그렇다. 언제든지 그 마음을 고치지 않을 것이다. 만일 몸이 없어진다면 정신만이라도 영세토록 가지고 있을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망설임과 거칠 것 없는 만해의 답변에 고압적인 일제 총독부의 재판관은 움찔했다. 만해는 법정에 설 때면 “자존심이 있는 민족은 남의 나라의 간섭을 절대로 받지 아니하오” “우리들의 행동은 너희들의 치안유지법에 비춰 보면 하나의 죄가 성립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조국과 민족을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다” 라며 한 치도 물러나지 않았다. 만해 한용운은 당시 법정 최고형이었던 3년 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

↑↑ 서대문형무소에 수감 중인 만해 한용운

ⓒ 인제신문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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