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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위해 희생했는데”…인제군, 정부 인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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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박인환(朴寅環) 출생지에 관한 조사 <2>

<특 집>

2022년 04월 05일(화) 22:06 [인제신문]

 

1) 함태원 옹의 이야기
나는 고성군 간성읍에서 살았으며 누이(함숙형)는 박인환 시인에게 시집을 갔고, 나는 또 박 시인의 5촌 당숙의 사위가 되어 가까운 친인척 관계를 맺게 되었다.
1925년 12월 결혼식을 올리기 위하여 하루 전날 처가가 될 박 시인의 당숙 집을 가게 되었지만 3년 전에 출가한 누이 집에는 들리지 못하였다. 혼인하러 온 사람이 누이 집에 먼저 들르는 것이 아니라는 풍습 때문이었다.
처가는 인제읍 남북리인 갯골에 있었으며 누이의 집은 처가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나의 처남이 되는 박감역(監役: 조선 시대 선동감의 종 9품의 벼슬로 감역관의 준말)댁의 집안인 박경필의 집이 남북리 갯골이었다는 것은 웬만한 사람은 다 안다.
따라서 박인환의 집이 남북리 갯골이었다는 것을 기억한다.(여기서 갯골이라 함)은 지금의 갯골로 불리는 골안 마을을 칭하는 것이 아니라 갯골 천을 끼고 있는 마을을 통상 그렇게 불렀다고 증인들은 말한다.

2) 이선녀씨의 이야기
나는 원주 문막에 살았으나 열아홉 살이 되는 해(1926년) 봄에 박감역 집안의 자손인 박경필과 결혼하였다. 박인환과는 5촌 당숙모가 되고 함태원 옹과는 처남의 댁이 된다.
남편이 공무원이었던 관계로 7년간 남북리 갯골에 거주하다 스물여섯에 인제를 떠났다. 남편의 직장 관계로 만주, 함경도 등지로 전보(傳報)되어 다니다 서울로 이사했다.
사택은 인제읍 남북리에 있었으며, 작은댁인 박인환의 집은 인제읍 동리(上里 : 상동리의 옛 지명)에 있었다. 그리고 그 집은 뒤에 홍수로 인하여 주위의 집들과 함께 떠내려가서 新 邑으로 이사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박인환이가 태어난 곳은 내가 시집올 당시에 그의 어머니가 임신 중이었으니까 동리(상동리)가 틀림없다. 인환이가 서울로 올 때는 부모님보다 먼저 올라왔는데, 그때는 우리가 서울에 와 있었으므로 우리 집에서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3) 이상호 옹의 이야기
나는 인제에서 대대로 살아온 평창이씨 이의관(議官: 조선시대 중추원의 벼슬)집안의 자손으로 인제읍 상동리에서 20여 년 전까지 살았다. 의관을 지낸 이시영의 딸 이용이박인환의 9조부(祖父)에게 시집을 가서 인환이와는 진외가 관계가 된다.
또 인환이와의 부친과는 인제보통학교 선후배로 관계로 같은 마을에 살면서 친인척이다 보니 서로 자주 집을 왕래하면서 절친하게 지내냈다. 박광선의 집은 남북리 갯골의 박영감댁과 울타리를 사이에 둘 정도로 가까운 290번지에서 살다가 상동리 159번지로 이사를 하였다.
그 주변에는 나의 소유토지가 많아서 지적도만 보면 남의 토지라 하여도 소유자를 다 알 수 있다. (우리가 지적도면을 제시하자 이상호 씨는 하나하나 짚어가며 소유주를 대는데 대부분이 현재 소유주와 일치하거나 후손들이어서 그분의 기억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경오년 (1930)에는 홍수로 인제 공립학교 앞 일대가 다 떠내려가 다시 피했으나 인환이의 집은 워낙 튼튼한 기와집으로 유실되지 않았다.
그 후 갑술년(1934)과 병자년(1936) 포락 때에는 물의 높이가 경오년보다 5치는 적었으나 그래도 큰 홍수였는데 인환이의 집이 그때 유실되어 현재의 농협 근처로 이사를 했다.

↑↑ 첫 가로등 후방 뒤편 44번 국도 정중앙임, 도로 방음벽으로 인해 생가터를 볼 수 없음

ⓒ 인제신문


4) 이채호 씨의 이야기
나는 이상호옹과 같은 집안의 자손으로 인제읍 상동리 202번지인 박 시인의 근처에서 태어났다. 가까운 인척이기도 하였으나 한 살 차이로 친구이다 보니 박 시인의 집을 자주 놀러 다니게 되었으며 그때 같은 학교에 다니던 중 서울로 이사를 하였다.
집의 위치를 특별히 기억하는 데에는 경오년 포락은 어렸던 시기로 기억나지 않지만 그 후 이종배 아저씨가 서울에서 학교에 다니면서 칼(완구)를 사다 주어 동리의 강가 근처에 있는 박 시인의 집에서 같이 놀았던 일과 두 차례 홍수로 인해 군청[(郡廳)(日帝時代의 舊 邑에 있었던 곳)]으로 피신을 하였다.

5) 이종배 씨의 이야기
난 이상호옹과 같은 집안이나 이시영(議官)의 직계 손)(直系 孫)이며 부친이 이익규 진사(進士)로 박인환의 할머니가 부친의 여동생이 된다.
서울에서 휘문고보를 다니며 방학 때 집을 다니면서 어렸던 박 시인을 데리고 다녔다.
박광선이 살던 곳은 남북리 갯골이었으나 상동리로 이사하게 되어 이곳에서 박 시인이 태어나게 된다.
집이 낮은 곳에 있었던 관계로 큰 홍수가 아니었던 을축년 乙丑年(1925)수해에 집 가까이 마당까지 물이 올라왔다.
경오년 포락은 보통학교를 다닐 때의 일로 우리 집의 다락까지 물이 찾으나 유실되지 않았으며 박 시인의 집도 무거운 기와와 굵은 기둥으로 떠내려가지 않고 사랑채 일부만 헐려 나갔다.

6) 김춘봉(87세) 現 대한노인회인제군지부장) 옹의 이야기
나는 인제읍 덕적리에 살았으나 당시 인제 공립보통학교를 다니느라고 학교 근처인 남북리에서 하숙(下宿)을 하였다.
박인환에 대해서는 잘 모르나 박광선은 호남(好男)형으로 아주 잘 살았고, 박 감역 댁도 부유한 집안이었다.
박광선의 집은 지금 지형이 많이 변해서 자세히는 알 수 없으나 현재 남초등학교가 인제 공립보통학교 자리라고 전제(前提)할 때 학교 오른쪽 측 갯골 천 상류좌안(下流左岸)끝부분에 이(議官)·큰 진사(進士)·새 진사 댁 등 □ 자형의 기와집들이 여기저기 있었다.
그러나 수해로 주택 전체가 유실(流失)되면서 구읍(舊邑)인 상리(上里)와 동리(東里) 일대가 현재의 상동리로 이동되어 새로운 시가지를 형성하게 되었다.
위와 같은 증언을 기초로 우리는 최종적으로 다음과 같은 기초를 얻었다.
시인 박인환의 부친인 박광선은 인제읍 남북리 290번지에 살면서 1922년 함숙형 여사와 결혼을 했다. 그리고 3년 뒤인 1925년에 인제읍 상동리 159번지로 이사를 했다.
이듬해 봄에는 박광선의 사촌 형제인 박경필과 이선녀여사가 결혼을 한다. 이무렵 함숙형 여사는 임신 중이었고, 그해 8월 15일 인환이를 낳았다.
경오년(1930)에는 대홍수로 대부분의 주택이 다 떠내려갔으나 인환이네 가옥은 일부만 유실되었다.
이곳에서 박인환은 진외가 집안인 이종배, 이채호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다.
병자년(1936) 수해 시에는 인환이네 집마저 떠내려가서 현재의 농협 건너편으로 이사를 했으나, 그곳에서 오래 살지 않고 서울로 이사를 했다.

4. 맺는말

지금까지 우리는 시인 박인환의 출생지 대해서 상동리 159번지라고 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인제읍 남북리 290번지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많았다. 또 인제읍 159번지에서 태어났으나 서울로 이사를 하기 전까지 인제읍 남북리 살았다고도 한다.
그러나 이번 자료조사 결과에서 얻은 결론에 따라 앞으로는 ‘인제읍 남북리 290번지에서는 박인환의 부친 박광선 씨가 살았고, 인제읍 상동리 구 159번지(택지 조성에 따라 구 번지가 멸실되면서 새로운 번지로 재편됨)로 이사한 후에 출생하였으며, 수해로 지금의 농협 건너편으로 이사해서 잠시 살다가 서울로 다시 이사를 하였다는 것을 분명히 해서 다시는 이로 인한 시비(是非)가 없었으면 한다.
첨언(添言)한다면 이번 조사에서 얻은 여타(餘他) 자료들도 총망라해서 다루고 싶었지만 시간 관계로 출생지에 대해서만 다룬 점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다음 기회로 미루어 둔 채 문을 닫는다.

〈참고자료〉
이상호 옹의 증언
함태원 옹의 증언
이선녀 씨의 증언
이채호 법무사의 증언
이종배 前 敎授의 증언

※ 참고로 박인환 출생지에 관한 논단은 1998년에 쓰여 졌으며 이 기록을 근거로 14년후인 2012년에 문학관이 준공되었다. 그리고 목마를 형상화한 기념비가 생가터를 보존하기 위해 2020년에 세워졌다. ⇒ 기념비와 컬러 사진 등은 추후에 실은 자료다.
원종문(前 인제군청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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