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손흥기의 시 읽기, 삶 읽기
|
|
시에게 길을 묻다 - 43
|
|
2022년 06월 08일(수) 13:11 [인제신문] 
|
|
|
| 
| | ⓒ 인제신문 | |
| 
| | ↑↑ 손흥기 (본지 논설주간, 문학평론가) | ⓒ 인제신문 | | 구공천지 아득히 눈 부서져 내리는 날
또 다른 무슨 말이 필요할까요. 어떤 할 얘기가 있어 중언부언(重言復言)할 수 있을까요. 대처에서 뿌리 뽑힌 삶이 설움일지라도, 구공천지 아득히 부서지는 눈발 속으로 당신들을 보내놓고 길마저 지워진 길 위에 수건 뒤집어쓰고 돌아 올 저녁, 그 밤 내내 뒤척일 우리들 엄니만 할까요.사흘 간의 꿈속 같은 설 휴가를 끝내고 아들놈은 다시 동계전지훈련장으로 갔습니다. 늦은 잠이 유난히 많은 녀석을 깨우러 몇 번이나 방에 들어갔다가 곤하게 자는 놈을 차마 깨울 수 없어서 이불만 끌어 덮어주고 나왔지요. 아침 겸 점심으로 읍내 터미널 근처 순대국집에서 아들놈이 좋아하는 순대국을 허겁지겁 떠먹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그쳤던 눈이 다시 내리기 시작하더군요.
제 몸집보다 큰 가방을 둘러멘 아들의 야윈 어깨가 안스럽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들놈이, 부스럭 거리며 주머니를 뒤지더니 세뱃돈으로 받은 돈 중에서 만원짜리 두 장을 꺼내더군요. 아빠 책 사보시라고, 술은 조금만 드시라고...
나쁜 놈이네. 정말 나쁜 놈이네. 허허허...이런 지랄 같은 경우라니! 몸조심하고 밥 잘 챙겨 먹으라고, 아빠답게 의젓하게 등 두르려주고 버스 창가에 앉은 놈한테 용감하게 브이자를 흔들어 보이고 돌아서는데 앞이 아무것도 보이질 않더군요.
내리면서 녹는 눈 질척대는 터미널 근처 선술집의 때 낀 유리창 밖 눈발 속으로 세상이, 구공천지가 아득히 부서져 내리고 있더군요. 이 눈발 속에 한계령을 넘을 아들놈을 생각하면서 소주를 한잔 했습니다.
아, 정말 대취하고 싶은 설 뒤 끝 구공천지 아득히 눈 부서져 내리는 날입니다.
|
|
|
|
인제신문 기자 injenews@hanmail.net “새감각 바른언론” - Copyrights ⓒ인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
|
|
인제신문
기사목록 | 기사제공 : 인제신문
|
|
|
|
|
|

|
|
|
|
실시간
많이본
뉴스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