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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위해 희생했는데”…인제군, 정부 인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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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군 항일투쟁 역사, 최병헌 향토사학자에게 듣는다<5>

인제군의 항일역사 발굴·기록…후손 찾아 명예 회복에 앞장

2023년 12월 19일(화) 20:04 [인제신문]

 

↑↑ 최병헌 향토사학자

ⓒ 인제신문

인제군 최병헌 향토 사학자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도, 아무런 보상도 없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며 묵묵하게 인제군의 항일역사를 발굴하고 기록하며, 후손을 찾아 명예를 회복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1972년 인제군 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최 향토 사학자는 1970년대 후반 예산 한 푼 없이 군지를 제작하며 아주 힘들었다고 한다. 힘든 만큼 얻는다는 진리처럼 최 향토사학자는 이때부터 지역 항일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 오늘에 이르렀다. 이에 인제신문사는 국운이 기울던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시대에 나라를 바로 세우고 찾고자 했던 선조들의 민중 항거를 찾아 기사를 연재한다.<성낙규 기자>

1편, 정원팔 항일투쟁, 전봉엽 독립운동 투쟁
2편, 김종철 항일의병, 이동근 독립운동, 김옥인 독립운동
3편, 장조민 항일투쟁, 서병선(병탁) 독립운동, 김동완 독립운동
4편, 마영규(응섭) 항일투쟁, 전봉학(성오) 항일투쟁, 정재근 항일투쟁
5편, 김성서 · 김진현 · 김원배 항일운동가

인제신문은 인제 항일독립운동가를 연재하며 이들을 재조명하고 있다.
또한, 최병헌 향토 사학자와 함께 새로운 인물을 발굴하는 동시에 기존에 관리되고 있는 이들의 업적도 지속해서 추가 발굴해 포상을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 포상 미전수자의 유족을 찾는 일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이에 항일독립운동에 대한 역사적 제보는 물론 후손에 대한 제보(전화:033-461-1588, E-mail:injenews@daum.net)를 기다리고 있다.

김성서(金聖西 1851~?)
인제군 서화면 천도리가 본적이고, 인제군 서화면 서화리 덕방동에 살았다. 그는 의병에 참여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노면성(盧冕星)의 휘하에 들어가 활동하다가 1908년 8월 25일 체포돼 귀순의사를 밝혀 경고를 받고 풀려났다.
그는 뚜렷한 직업이 없이 날품팔이로 생활하고 있었으나, 착실한 천도교인으로 일찍부터 한일합병을 심각하게 개탄하고 있었는데 마침 손병희 등이 조선의 독립을 주창하게 되자 크게 찬동하고 배일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1919년 4월 1일 횡성읍내로 행상을 갔다가, 마침 시장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자 이에 군중들과 함께 독립만세 운동에 참여했다. 정해경(鄭海璟)·조상렬(趙常烈)·김윤신(金允信)·김성수(金聖洙) 등과 함께 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돼, 1919년 9월 18일에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의 형을 받았다.
이에 2002년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인정해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참고문헌> 판결문(경성지방법원:1919년 5월 9일), 판결문(경성복심법원:1919년 7월 11일), 폭도귀순보고의건(강원도경찰부.1908년),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5집 954∼955면),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국사편찬위원회, 별집 제2집 141면)

김진현(金晋鉉(炫) 1883~ ?)

↑↑ 김진현의 폭도 체포에 관한 건(강원도 경찰부장. 1910년 3월 14일)

ⓒ 인제신문


인제군 서화면 천도리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랐다.
그는 경주 김씨로 1873년에 부친 정호(正鎬, 자 河正;1843)과 모친 강릉함씨(1848)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연봉(淵鳳)이고 진현(晋鉉)은 자다.
1907년 1월에 노면성(盧冕成)의 휘하에 들어가 대원 800여명(총기휴대자 100명)들과 함께 인제·양양·강릉 일대를 이동하면서 일본군과 교전하다가 강릉 교전에 패한 후 피신했다.
1908년 2월부터 횡성군 청일면 사재곡 김성칠(金聖七) 집에서 25일간 마무르다 잠시 귀가하였다가 자택에서 체포됐다.
1910년 4월 2일 경성지방재판소 춘천지부에서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가 선고 되었으나, 동년 4월 26일 경성공소원에서 재개된 2심에서는 폭도죄를 적용 징역 2년 형을 받았다.
1995년에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인정하여 건국훈장 애족장 수여하였으나, 직계후손이 없어 국가보훈처에서 보관하고 있다.
가까운 인척으로는 안장환(安長煥, 1923~?)에게로 출가한 연순(潤順, 1933~2016)이 있었으나 이미 작고한 후라, 그의 아들 동국(東國, 1959~)만이 서화면 천도리 762~2번지에 거주하고 있다.
<참고문헌>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제1집 263면, 폭도 체포에 관한 건(강원도 경찰부장. 1910년 3월 14일), 한국독립운동인명사전

○. 김원배(金元培 1896 ~?)

↑↑ 김원배 항일운동가의 수감 당시 모습

ⓒ 인제신문


김원배 항일운동가는 본적이 인제군 내면 광원리이고 주소는 인제군 기린면 방동리다.
그는 1896년 10월 25에 평창군 연평 면온에서 출생했다. 김해 김씨로 본명이 원배이고, 일본식 이름은 해김원배(海金元培)이며, 김춘원(金春元)이라고도 한다. 자는 종삼(宗三)이다.
1940년 1월에 김장옥의 권유로 인천교(人天敎)에 들어갔다. 인천교는 조선독립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비밀종교 단체로 수차례 비밀회동을 하는가 하면 헌금 및 기금 마련에 적극 가담했다. 1942년 11월 6일에는 철원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의 형을 받고, 경성형무소에서 형을 마친 후 1944년 5월 6일에 출소했다.
<참고문헌> 신분장지문원문,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경성형무소. 1809년 11월)
성낙규 기자
<사진>김진현의 폭도 체포에 관한 건(강원도 경찰부장. 1910년 3월 14일)
<사진>김원배 항일운동가의 수감 당시 모습

인제신문 기자  inje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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