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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위해 희생했는데”…인제군, 정부 인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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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군 항일투쟁 역사, 최병헌 향토사학자에게 듣는다<8>

인제군의 항일역사 발굴·기록…후손 찾아 명예 회복에 앞장

2024년 02월 08일(목) 10:31 [인제신문]

 

↑↑ 최병헌 향토사학자

ⓒ 인제신문


인제군 최병헌 향토 사학자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도, 아무런 보상도 없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며 묵묵하게 인제군의 항일역사를 발굴하고 기록하며, 후손을 찾아 명예를 회복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1972년 인제군 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최 향토 사학자는 1970년대 후반 예산 한 푼 없이 군지를 제작하며 아주 힘들었다고 한다. 힘든 만큼 얻는다는 진리처럼 최 향토사학자는 이때부터 지역 항일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 오늘에 이르렀다. 이에 인제신문사는 국운이 기울던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시대에 나라를 바로 세우고 찾고자 했던 선조들의 민중 항거를 찾아 기사를 연재한다.<성낙규 기자>

<서훈된 독립투사>
1편, 정원팔 항일투쟁, 전봉엽 독립운동 투쟁
2편, 김종철 항일의병, 이동근 독립운동, 김옥인 독립운동
3편, 장조민 항일투쟁, 서병선(병탁) 독립운동, 김동완 독립운동
4편, 마영규(응섭) 항일투쟁, 전봉학(성오) 항일투쟁, 정재근 항일투쟁
5편, 김성서·김진현·김원배 항일운동가
6편, 김윤신·서동철 항일 운동가
<서훈 추진중인 독립투사>
7편, 이현노·이성종·심한구 항일 운동가
8편, 심주섭·송인홍·김원거·박순모 항일 운동가 –끝-

인제신문은 6편까지 총 16명의 지역 항일투사의 출생과 업적 그리고 이후 삶을 소개했다. 이들은 모두 최병헌 향토사학자에 의해 발굴돼 국가보훈부로부터 서훈된 항일운동가이다.
본지는 최 향토사학자와의 회의를 통해 비록 현재까지 서훈은 받지 못했지만, 조국 독립을 위해 초계와 같이 목숨을 던진 조상의 얼을 되살려 보자는 취지로 7·8편에 이들을 소개하기로 했다.

심주섭(沈周燮. 1872~1934)
심주섭의 본적은 인제군 서화면 가전리이며, 주소지는 인제군 서화면(이포리 화학동)이다.
심주섭(자 창호)은 청송 심씨로 임신년(1872)에 심상기(자 치성)와 밀양 박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가 어느 의진에서 활동했는지 여부는 불분명하지만, 부장(部將)으로 지목되는 의병 심주섭을 쫓고 있다는 강원도경찰부장의 보고가 기록으로 전해오고, <폭도에 관한 편책> ‘평강군 고십면에서 폭도침입의 건’에도 심주섭을 비장(匪將)이라고 명시한 내용이 기록돼 있다.
그는 1934년 10월 2일 자택에서 사망하고, 후손으로는 첫째 아들 재덕(載德 1890~1951)은 사망하고, 둘째 아들의 자 둘째 순흠(淳欽 1938~)이 대를 이어가고 있다.
심주섭의 묘소는 서화면 가전리 수곡동 수채 골에 있다.
참고 자료은 <폭도에 관한 편책> 평강군 고삽면에서 폭도침입의 건

↑↑ 심주섭 항일운동의 내용이 담긴 <폭도에 관한 편책> 3쪽

ⓒ 인제신문


송인홍(宋仁弘 1874~?)
송인홍의 본적과 주소는 인제군 동면 귀둔(혼)리다.
그는 1907년 5월 박화남(朴華南(본명 長浩))의 휘하에 들어가 박순모(朴順模)와 더불어 대원 500여명(총기휴대자 300명)과 함께 도내 일원을 오가며 일본군과 교전을 했다. 그러던 중 평창군에서 일본병사 5명과 총격전에서 부상을 입고 전전하다가 1910년 2월경에 체포됐다.
송인홍은 심한 고문을 못 이겨 동지인 동향인 박순모를 진술했다. 같은 달 27일 오후 7시 30분경 진술에 의하여 체포된 박순모 취조 과정에서 간수자의 소홀한 틈을 타 탈출했다.
참고 자료는 <폭도에 관한 편책> 폭도 미 귀순자 체포의 건(1910년. 3월 1일), <폭도에 관한 편책> 폭도 체포의 건(1910년 3월 11일), <폭도에 관한 편책> 형사피고인 도주의 건(1910년 3월 4일)

김원거(金元巨 1854~?)
김원거의 본적과 주소는 인제군 군내면 가리산리다.
그는 1907년 9월 의병장 주광식(朱光植) 휘하에서 인제·홍천·양양·고성·회양 등지를 오가며 군자금 모금 활동을 펼쳤다. 1908년 2월 말에는 인제군 북면 설악산 오세암을 거점으로 주변 마을에서 군자금을 모집했다. 인제수비대(일본군)에 의해 패한 이후, 이치화(李致化) 등과 함께 인제·홍천·양양 등지에서 활동하던 중에 일시 자택에 들렀다가 순사 전상청친(田上淸親)에게 발각돼 본 월 6일에 체포됐다.
참고자료은 <폭도에 관한 편책> 폭도 체포의 건(1910년 6월 23일), <폭도에 관한 편책> 폭도 체포의 건(1910년 6월 14일)

박순모(朴順模 1878~?)
박순모는 본적과 주소는 인제군 동면 귀둔리 8통 1호다.
그는 1907년 9월 박화남의 부하인 이춘배(李春培)의 권유로 의진에 입대해 송인홍(宋仁弘)과 더불어 약 50여명의 대원들과 횡성군 복천리(復川里)에서 일본 헌병대와 교전을 했고, 양양군· 인제군·양구군·회양군·홍천군을 오가며 군자금 70여원을 모금하다가 1910년 2월에 송인홍의 진술에 의해 체포됐다.
참고 자료는 <폭도에 관한 편책>폭도 체포에 관한 건(1910년 3월 11일), <폭도에 관한 편책>형사 피고 도주인의 건(1910년 3월 4일)
성낙규 기자
<연재 종료>

인제신문 기자  inje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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