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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의 얼을 되살리고 지역의 독립역사 자존심 갖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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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군 항일역사 발굴·기록, 후손 찾아 명예 회복에 앞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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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2월 20일(화) 14:17 [인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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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지난 1월 말 9편의 인제군 항일투사 기획기사 마무리될 무렵 최병헌 향토사학자를 자택에서 만났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 ⓒ 인제신문 | |
인제군 최병헌 향토 사학자와 인제신문은 현재까지 서훈된 16인의 지역 항일투사와 아직 서훈되지 못했지만, 서훈을 추진 중인 7인의 항일투사를 총 8회에 걸쳐 소개했다. 이들의 업적을 기리는 동시에 그들의 삶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는 좋은 기회를 마련했다.
최 향토 사학자는 항일역사 기록에 전무하던 지역 항일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40여년을 뚝심 있게 발굴해 오고 있다. 아무도 관심을 두지도, 아무런 보상도 없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며 묵묵하게 지역의 항일역사를 발굴하고 기록하고 있다. 후손을 찾아 명예를 회복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그는 1972년 인제군 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1970년대 후반부터 예산 한 푼 없이 군지를 제작하며 아주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힘든 만큼 얻는다는 진리처럼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기록물을 찾고 후손을 찾아다녔다.
지난 1월 말, 9편의 인제군 항일투사 기획기사 마무리될 무렵 최병헌 향토사학자를 자택에서 만났다.
그는 “항일운동가들은 대부분 가명을 썼지. 그 당시 누가 본명을 드러내 놓고 활동할 수 있었겠는가?” 반문했다.
“어디 조그만 단서라도 나오면 여러 정황을 살펴보고 본적과 주소를 대조하고 이름과 후손을 찾아야 하지만 최근 개인정보보호법이 강화돼 대조 작업이 더욱 어려워졌다. 가족이 아닌 이상 호적 확인은 현재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관공서에서는 가족이어야 열람할 수 있다고 답변을 하지만 나는 항일투사와 그의 가족을 찾기 위해 호적을 찾아보는데 상황이 반대되다 보니 참 난감할 때가 많지”라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서훈되지 못한 이현노 항일운동가는 자식도 없이 사망했다. 동생을 찾았는데 호적이 불타 새로 만들면서 형이 호적에서 제외됐다. 동생은 당시 형에 대한 기억을 전혀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현노 독립투사는 와병과 격전하다 전사했다. 이 기록은 <강원도상황경개>203쪽, <인제군지>1980년 등에 기록돼 있지만 그의 호적에서 그를 확인할 길이 없다. 사실 당시 독립운동가 가족은 일본의 심한 감시를 받다 보니 나서서 호적정리를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서훈 평가 시 시대적 상황도 어느 정도 고려돼야 더 많은 독립투사들이 공을 인정 받을 수 있을 텐데”라며 아쉬워했다.
그는 “김원거 독립투사는 본명이 아닌 자를 썼는데, 그는 설악산 오세암을 거점으로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됐다. 그의 체포기록은 <폭도에 관한 편책> 1910년 6월 14·23일 기록에 남아 있다. 그의 이 정도 공이면 애국장 정도는 받을 수 있겠구나 생각했지만, 막상 그의 본적과 주소를 찾아 호적을 확인해 보니 본명이 ‘연직’이었다. 이름 외의 생년월일이 동일했지만, 국가보훈부는 인물이 명확하지 않다는 근거를 들어 서훈 성립이 되지 않는다고 통보했다. 그때도 참 많은 아쉬움이 남았다. 어렵게 한분을 찾았는데...”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그에 대한 기록을 더 찾았다. 최근 그의 후손들이 강릉 사천면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가려고 계획했지만 부인이 병중이라 가지 못하고 있다.
최병헌 향토사학자는 팔순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그는 발굴 작업을 멈출 수 없다. 이는 조상의 얼을 되살리는 동시에 지역 독립역사의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기틀을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이래야 지만 후손들이 본을 받고 자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실 쉬고 싶지, 그런데 아무도 이 일을 하지 않아, 젊은이가 좀 나서주면 좋겠지만 나서는 이가 없다 보니 내 삶이 다하는 날까지는 천직이라 생각하고 해야지... 별 수 있나?”라고 말했다.
최 향토사학자는 젊었을 때 배드민턴으로 체력을 키웠고, 현재는 탁구하며 체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의 거실 한편에 있는 옷걸이에는 많은 메달이 걸려있다. 모두 배드민턴 경기에서 따온 메달이었다. 그는 오늘도 오전에 탁구장에 다녀왔다고 했다. 아직 건강에 자신있다는 말하는 최병헌 향토사학자는 본 기자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컴퓨터 앞에 앉으며 자료정리를 시작했다.
성낙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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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지난 1월 말 9편의 인제군 항일투사 기획기사 마무리될 무렵 최병헌 향토사학자를 자택에서 만났다. 인터뷰가 끝나고 자료정리를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아 포즈를 취했다. | ⓒ 인제신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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