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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동 계곡, 끝없이 흐르는 사랑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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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진 씨는 깊은 산속에서 심오한 내공을 쌓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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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8월 05일(화) 09:06 [인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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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진수·김은진 부부가 집앞에 조성한 넓은 양잔디 밭에서 양봉을 하고 있었다. 사진은 부부가 포즈를 취했다. | ⓒ 인제신문 | |
용대리 깊숙한 산골짜기에 자리한 연화동 계곡은 향로봉에서 흘러내린 다섯 갈래 물줄기가 하나로 모여 흐르는 곳으로 일 년 내내 물이 마르지 않는다. '연화'라는 이름은 예전 이곳에 연꽃이 많이 피었다는 데서 붙었다는 설도 있고 연꽃이 물 위에 떠 있는 형국을 닮아 ‘연화부수형’이라 불렸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연화2교를 건너 개울을 따라 좁은 길을 한참 오르다 보면 갑자기 산속의 분지가 펼쳐지며 시야가 확 트인다. 깊은 산속임에도 햇볕을 머금은 넓은 양잔디가 펼쳐지고 굵직한 소나무가 마치 이곳을 지키는 수호신처럼 서 있다.
이 풍경은 언뜻 골프장을 떠올리게 하지만 주변에는 화려한 건물 하나 보이지 않는다. 대신 40년 넘게 벌을 키우며 살아온 이진수·김은진 부부의 소박한 집이 계곡을 지키고 있다. 이곳이 바로 ‘이조은 토봉원’이다.
“토종벌을 돌보는 건 아이를 키우는 거랑 똑같아요. 조금만 소홀해도 금세 약해져요”라며 이진수 씨는 벌통 사이를 오가며 꿀벌들을 살핀다. 부부는 2천 평 남짓한 산자락에 100여 통의 토종벌을 기르며 꿀을 채취해 생계를 이어간다. 연화동 꿀은 예로부터 임금님께 진상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귀하다.
과거 부부는 잔디밭에서 캠핑장을 운영하며 여름철에는 토종닭을 삶아 팔기도 했다. 당시 이곳에는 많은 피서객들이 찾아왔고 계곡물에 발을 담그며 시원함을 즐기는 아이들, 캠핑을 즐기는 피서객들의 발길로 북적였다. 그 모습은 은진 씨에게 오래전 자신의 가족을 보는 듯한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현재 부부는 캠핑장 운영을 접고 토종벌꿀에 전념하며 삶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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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앞 마당에 있는 은진미륵 반가사유상 사진 | ⓒ 인제신문 | |
이들 부부의 행복은 1984년 둘째 딸 조은 양의 탄생으로 절정을 이뤘다. 큰딸과 함께 막내를 돌보며 분주했지만 집에는 늘 웃음이 가득했다. 그러나 1994년 8월 31일 당시 열한 살 조은 양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부부의 세상은 송두리째 무너졌다.
은진 씨는 그날을 떠올리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숨 쉬는 것조차 힘들었어요. 가슴을 짓누르는 슬픔은 저를 완전히 무너뜨렸죠”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이가 세상을 떠난 지 사흘째 되던 날 믿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상황에서 딸의 목소리가 들린 것이다.
“엄마, 나 죽은 거 아니에요. 높은 도를 공부하러 떠난 거예요. 유학 보냈다고 생각하세요"라고 딸이 은진 씨에게 속삭였다고 한다. 그날 이후 은진 씨는 딸이 곁에 있다는 강한 느낌을 받았다. 때로는 딸이 이야기를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위 사람들은 깊은 슬픔이 만들어낸 착각이라고 했지만 그는 확신했다. “딸이 제 몸을 빌려 세상을 본다고 느꼈어요. 그게 아니었다면 저는 아마 살아남지 못했을 겁니다”고 말했다.
은진 씨가 딸 조은이라는 증표로 ‘이·은·해·공·약’이라는 글귀의 명찰을 보여줬다. 이는 수호신과 해수관음보살이 지키는 공주로 본인을 지킨다는 의미라고 했다. 심지어 딸이 도를 공부하러 떠난 8년 동안은 낙산사 관세음보살의 제자 효진이라는 친구가 대신 자신을 지켜줬다는 신비한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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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은진 씨가 딸 조은이라는 증표로 ‘이·은·해·공·약’이라는 글귀의 명찰을 보여주고 있다. | ⓒ 인제신문 | |
은진 씨는 “저는 지금까지 딸과 한 몸으로 살아가고 있어요”라며 담담히 말했다. 처음 들으면 허무맹랑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의 맑고 초롱한 눈동자를 마주하면 그 속에 담긴 사랑과 그리움이 그대로 전해진다.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깊은 감정은 보는 이를 울컥하게 만든다. 이 대목에서 1990년대 전 세계인들의 심금을 울렸던 영화 '사랑과 영혼'이 떠올랐다.
이 영화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연인 몰리(데미 무어 역)의 곁을 떠나게 된 샘(패트릭 스웨이지 역)이 천국으로 향하지 못하고 그녀 곁을 맴도는 이야기를 담았다. 육체가 없는 샘의 존재를 몰리는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다른 영혼의 도움을 받은 샘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녀에게 사랑을 전한다. 이 영화는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다.
이들 부부에게는 또 하나의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사건이 있었다. 1996년 11월 5일 계곡은 또 다른 운명의 날을 맞았다. 부부는 집에 화재가 발생해 모든 것을 잃고 산을 내려왔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계곡에 무장공비가 나타난 것이다. 2명의 공비가 부부의 은신처를 찾았지만 불로 인해 먹을 것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큰길로 나와야 했고 이 과정에서 군인들에게 발각돼 격렬한 총격전 끝에 사살됐다.
“집에 불이 나지 않았다면 우리는 계곡에 있었을 거예요. 공비들과 마주쳤다면 아마 살아남지 못했겠죠”라며 부부는 이 일을 두고 지금도 딸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날의 총성과 긴박한 발자국 소리는 연화동 계곡에 깊이 새겨져 있으며 지금도 계곡 입구에는 그날을 기억하는 전적비가 서 있다.
은진 씨는 무속인이 아니다. 굿을 하거나 점을 치지 않는다. “조은이는 묻는 말에만 답해요. 점을 보거나 굿 같은 건 하지 않아요"라며 웃었다. 부부는 꿀벌을 돌보며 딸과 함께 산다는 믿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녀는 “나는 왔노라, 보았노라, 들었노라. 인연이 되면 책을 쓰겠노라”라며 외쳤다. 이 말은 딸 조은이가 전해준 호소라 했다. 은진 씨 표정은 밝았다. 그러나 그 웃음 속에는 여전히 딸을 그리워하는 애절함이 느껴진다.
심오한 내공을 쌓은 은진 씨가 사는 연화동 계곡의 물은 오늘도 마르지 않는다. 벌들이 꿀을 모으듯 부부의 사랑과 믿음도 쉼 없이 이어지고 있다. 계곡 물소리로 시작해 계곡 물소리로 끝나는 부부의 하루. 그 믿음은 계곡의 물처럼 흐르며 두 사람의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되고 있었다.
성낙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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